방학 같지 않은 대학 '방학'…"취업 위해 살아가는 노예"

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 2015.12.21 15:46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에서 후기 학위수여를 받은 졸업생이 취업게시판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뉴스1

#올해 취업에 실패한 대학 4년생 홍모씨(26)는 다가온 겨울 방학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녹록지 않은 취업 전선을 한번 겪고 나니 예전처럼 방학이라고 마음 편히 쉴 수 없어서다. 학기 도중 미뤄놨던 어학·자격증 공부를 하고, 취업스터디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다 보면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흘러간다. 홍씨는 "학기중엔 학점의 노예, 방학 때는 스펙의 노예"라며 "취업을 위해 1년 내내 쉴 틈 없이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게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들 숙명 같다"고 털어놨다.

#내년에 대학 3년생이 되는 성모씨(22·여)는 올 겨울 방학부터 취업 준비에 전념할 생각이다. 오전엔 계절학기 강의로 부족한 학점을 채우고 오후엔 어학원에 나가 영어회화를 배울 계획이다. 인터넷 강의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주 1회 봉사활동, 월 2회 대외활동 모임에 참여할 걸 생각하면 8주간 방학도 짧게만 느껴진다. 성씨는 "입학 때부터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몇몇 학생과 비교하면 그리 빠른 편도 아니다"며 "대학 생활의 즐거움과 낭만은 이제 우리 세대에선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에게 방학은 더이상 '배움을 놓는' 시기가 아니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려면 평소보다 방학 때 배울 일이 오히려 더 많아서다. 전문가들은 취업난이 낳은 불가피한 현상이자 청년실업해소 없이는 끊기 어려운 고리라고 분석한다.

21일 취업포탈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최근 국내 4년제 대학생 1013명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계획'에 대해 물어본 결과, 전학년 모두에서 '해외 배낭여행'을 가장 해보고 싶은 일로 꼽았지만 당장 해야할 일로는 '취업준비'가 가장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1학년 51.6% △2학년 62.7% △3학년 55.1% △4학년 78.3% △졸업유예생 78% 등이 각각 취업준비를 하거나 취업과 관련된 자격증 취득 공부에 겨울방학을 쓰겠다고 답했다. 특히 2학년부터 졸업유예생들 사이에선 전체 20% 안팎이 대학생활 목표로 '조기취업'을 꼽아 이들이 겪고 있는 높은 취업 스트레스를 드러냈다.

홍씨는 "이미 정해진 학벌은 제쳐두고 여름·겨울 포함 8번 방학 동안 한번에 스펙 하나씩만 쌓아도 어느새 4학년 2학기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방학이라고 무턱대고 놀다간 자칫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의 반도 못 채운다"며 "이것저것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취업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생겨 포기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고 밝혔다.


사정은 지방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지방 국립대 2년생인 황모씨(22·여)는 최근 겨울 방학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방학마다 서울에 올라와 이번이 벌써 4번째다. 인턴과 대외활동 경력을 쌓고 싶은데 지방에선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서다. 월 40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학원비와 각종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하루 4시간씩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도 한다.

황씨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 맞춰 국립대를 갔는데 방학 때 들어가는 취업준비 비용까지 더하면 웬만한 사립대에 다니는 것과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학기와 방학 구별없이 취업 준비에 목 매는 자신을 보면 대학은 이제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사관학교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방학을 방학처럼 보내지 못하는 것은 극심한 취업난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 졸업자 55만7234명 가운데 취업에 성공한 구직자는 32만7186명으로 집계됐다. 2013년 67.4%보다 0.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시장도 시장이니 만큼 구직자들간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라면서도 "대학 생활에서 모두가 스펙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추구하는 일은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획일화시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사회적으로 큰 손실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생들이 방학까지 취업준비에 여념 없는 이유는 결국 그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들 모두 다하는 스펙에만 목을 맨 결과"라며 "기업이 직무직종별로 어떤 능력과 자질을 요구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낭만 없는 대학 생활은 끝나지 않는다. 기업과 구직자간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함으로써 학생들이 스스로 강점과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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