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의지' 잃은 야당…국회선진화법의 '덫'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15.12.21 06:01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기득권화된 야당…국회선진화법, 꼭 여당에게 불리할까?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 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징기스칸이 죽기 직전 남긴 경고다. 그의 말대로였다. 인류 역사상 최대 제국은 정착지에 동화돼 유목민의 야성을 잃으면서 몰락했다.

'결핍'이 사라지면 '욕망'도 줄어든다. 징기스칸은 '결핍'의 중요성을 알았다. 적의 성을 공략하기 전 징기스칸은 병사들에게 주는 고기와 술을 줄여 '독기'를 끌여올렸다. 도시를 함락하면 배불리 먹고 마시고 마음껏 약탈하게 해주겠다는 말로 병사들이 '전의'에 불타게 했다. 그리곤 매번 약속을 지켰다.

기원년 200년경 초나라 장수 항우는 진나라를 치러 가면서 병사들에게 사흘치 식량만 챙기고 솥은 모두 깨뜨리라고 명했다. 밥은 진나라 군대를 물리친 뒤 그들의 솥으로 해 먹으면 된다고 했다. 또 항우는 군사들이 장강을 건너자 타고 온 배를 모두 침몰시켰다. 진나라를 이기지 않고는 밥도 먹을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싸웠고 결국 이겼다.

솥을 깨고 배를 물 빠뜨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파부침주'(破釜沈舟)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에는 배를 불 사르고 솥을 깨뜨린다는 뜻의 '분주파부'(焚舟破釜)라는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굶어 죽지 않고 살아 돌아갈 길은 이기는 것 뿐이라는 사실 만큼 병사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도 없다. 이 역시 '결핍'의 힘이다. 서양에도 '다리 불태우기'(Burning bridges)란 개념이 있다. 전쟁에서 자신의 유일한 퇴로인 다리를 불태우는 전략이다. 물을 등지고 싸운다는 뜻의 '배수지진'(背水之陣)과도 일맥상통한다.

자고로 '권력'은 결핍된 자들의 몫이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스탈린은 시골 출신이란 이유 등으로 젊은 시절 갖은 설움을 당했다.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아래에서 외롭고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에 대한 보상심리가 이들의 '권력의지'에 불을 당겼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뒤 친정을 향해 "평생 야당하기로 작정한 당"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15일 부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야당이 '집권의지'를 상실했다는 뜻이다. "집권할 수도 없지만 집권해서도 안 된다" "물이 천천히 뜨거워지면 안락하게 있다가 죽는 냄비 속 개구리가 되는 것 아닌가"라고도 했다. 문제는 이런 문제의식을 안 의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리함을 뚫고 고(故)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야당의 '집권의지'는 왜 사그라들었을까? 정치권의 한 인사는 '국회선진화법'을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날치기 통과'를 차단해 야당이 합의해주기 전엔 사실상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게 만들어둔 '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이 어느덧 기득권화됐다는 논리다.

이 인사는 "여당 원내내표와 장관들이 야당 원내대표와 상임위 간사들에게 제발 만나 달라고 빌고, 여당이 쟁점법안 하나라도 통과시킬라 치면 야당이 '바터'(맞교환)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도 함께 통과시킬 수 있는데, 야당이 굳이 집권할 필요성을 느끼겠느냐"고 했다.

여당 지도부가 국회선진화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국회선진화법이 반드시 여당에게 불리한 법일까? 정당의 존재이유인 '집권'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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