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이 벗겨진 파란대문의 집, 기다란 막대로 큼지막하게 빗장을 질러놓은 빈 집, 마당에서 담장 밖으로 웃자란 가지를 내밀고 떠난 쥔을 기다리는 나무가 있는 집, 까치 몇 마리 와 아무 때나 쥔마냥 울어대는 집, 뜯어보지 않은 우편물이 우편함에 쌓여있는 집, 상상의 집이 아니라 저렇듯 현존의 집이다. 그런 저 집은 누구의 집이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만취한 내가 저 빈집을 찾은 것인지, ‘다른 행성’의 네가 저 빈집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나 저 파란대문의 빈집은 내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 집임엔 틀림없다. 가끔 만취한 상태면 나타나는 기억의 집.
그대에게도 저 기억의 장소 같은, 무의식 같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고 여기고 믿는 네게 전화를 걸 수 있는, 그런 곳 하나 있었으면 이 겨울 턱없이 춥지만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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