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이 선호하는 기업'에 숨겨진 진실

머니투데이 이재은 여자라이프스쿨 대표 | 2015.12.18 06:00

[여자사람취준생일기]

“이제 여성차별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남녀가 평등한 시대니까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남성과 동일하게 주인의식을 갖고 일한다면 여성취업은 특별할 것도 다를 것도 없습니다.”

가끔씩 남성강사가 진행하는 여대생 취업강좌를 듣다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남성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는 말 자체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동시에 여성 취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시각에서 의미하는 ‘일터의 평등’은 남성의 평등과는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은 기회, 조건, 결과의 평등을 의미해야 한다. 겉으로는 동일한 기회가 제공되는 것 같아도 실제로 그 기회를 활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제반조건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결과의 차등이 생성될 수밖에 없다면 평등은 기회라는 이름의 차별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해외 장기체류 근로자에게 승진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있다고 할 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평등한 기회 같지만, 모성과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평등한 기회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은, 그 기회를 앞에 두고 이 일을 계속 하는 게 맞을까 보다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를 고민해야 한다.

지원자격에 성별 제한이 없다고 해서, 역량 중심의 채용을 한다 해서 평등한 고용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건 아니다. 군필자 우대, 남성중심의 조직문화, 높은 남성비율 등 조직의 구조적 문제로 여성 지원자들은 면접장에 서는 그 순간부터 불리함을 경험한다. 조건과 결과의 평등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 앞에서 여성구직자들은 남성과는 다른 취업전략, 기업선택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4년제 대학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기업의 차이를 조사한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해당 조사는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리스트를 주고 그 중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남학생 712명과 여학생 799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 남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응답률 19.8%로 1위에 올랐고 다음으로 2위 △현대자동차(11.5%), 3위 △포스코(10.4%), 4위 △한국전력공사(10.1%), 5위 △기아자동차(7.9%)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여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기업에는 1위 △CJ제일제당(18.9%)에 이어 △아시아나항공(14.6%)과 △대한항공(14.4%) 등 국내 주요 항공사가 나란히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4위 △삼성전자(13.9%), 5위 △포스코(10.0%) 순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기관은 이처럼 대학생들로 하여금 위의 기업에 취업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영향을 준 요인들에 대해 남학생들은 ‘기업이 시행하고 있는 복지제도 및 근무환경(45.6%)’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여학생들은 ‘기업 대표의 대외적 이미지(52.3%)’를 꼽았다. 더불어 여학생들의 경우 기업 문화(개방적 또는 수평적 등_26.3)와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 체험 경험(15.5%) 등에 의해 취업하고 싶은 기업을 선정했다는 답변이 남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분석했다.

물론 연봉, 복지제도와 같은 실제적인 혜택을 중시하는 남성 지원자와 달리, 여성 지원자는 남성에 비해 경영자의 경영이념과 기업문화를 중시한다는 분석은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또 다른 해석 역시 가능하다.


여대생이 취업하고자 하는 TOP 3기업인 CJ제일제당,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은 전체 근로자의 여성비율이 30%이상을 차지하는 한편, 여성 복지와 여성인력 육성에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는 여성친화기업으로 손꼽히는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성들에게 있어 취업하기 ‘좋은 기업’이란, 연봉이나 기업의 브랜드 파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 구직자 내면에 존재하는 차별에 대한 불안을 덜어낼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여성비율, 여성관리자 비율, 여성적합 및 친화직무 육성 상황 등은 실제적 평등 실현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좌표가 될 수 있다.

여성비율이 높을 때, 조직 내 주변인으로 머물지 않고 주체적으로 능력을 펼칠 수 있다. 책상 바로 앞, 옆에 앉아있는 여성 관리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때, 자신 역시 조직에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 여성적 가치를 독려받을 수 있는 직무들이 많아질 때,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

“이 회사의 임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주목받는 여성인재로 입사했죠.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필요한 역량과 커리어를 쌓아서 다른 일을 시작 해야겠다 생각해요. 팀장 이상의 여성선배는 정말 드물고, 닮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여성 관리자는 더욱 드문 현실을 살아가고 있거든요.”

어렵사리 취업의 문을 뚫고 입사했으나 이내 이직을 결심하는 여성들을 보면, 여성이 직업에 대한 주체의식과 적극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의 조직구조와 문화 자체가 여성의 주인의식을 상실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 대학생활 동안 갈고 닦은 역량을 발휘하고 공정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성이 조직의 동등한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신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더불어 그 희망과 신뢰를 지켜줄 수 있는 조직이 여성들에게는 최고의 직장이 될 것이다.

어떤 기업에 원서를 넣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겉으로 보여지는 기업 이미지 대신 어떻게 여성인력을 선발, 배치하고 육성해 나가는지와 관련된 인사제도를 찾아보자. 더불어 그 제도에 담긴 경영자의 경영이념과 인재에 대한 철학을 살펴볼 것. 여성들에게 최고의 직장이란, 여성인재를 정말로 평등하게 대우할 준비가 돼 있는 곳이니까.

◇이재은 대표는… 현재 여성 커리어 카운슬러로 활동하며 강의, 상담,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 페미니즘 매체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고 현재 여성 커리어교육업체인 여자라이프스쿨을 아담하게 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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