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탈당…'통합·분열', 굴곡의 야권 역사

머니투데이 박경담 김승미 기자 | 2015.12.13 15:37

[the300]합치고 쪼개지길 반복한 야권…정권 획득은 10년 그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창업주였던 안철수 의원이 13일 탈당을 공식 선언하면서, 합치고 쪼개지길 반복한 야당 역사에 분열의 페이지가 한 장 더 추가됐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9월 '창당 60주년'을 대규모로 자축했지만 안 의원 탈당에서 보듯 야당 역사 이면엔 통합과 분열의 굴곡진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당장 안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김한길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이 통합하며 시작된 새정치민주연합은 1년 9개월 만의 실험으로 끝났다. 지난해 3월 두 세력이 야권 개편과 중도층 확장을 명분으로 통합을 발표할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판은 흔들렸다.

하지만 야당이 지난해 6·4 지방선거 승리를 끝으로 7·30 재보궐선거(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 4·29 재보선(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새누리당에 패하며 분열의 싹이 틔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문제까지 엮이며 친노(노무현계)와 비노는 사사건건 부딪쳤고 이날 안 의원의 탈당으로 정점을 찍었다.

◇1987년 동교동-상도동계 분열... 평화민주당 창당

야권 내부 분열은 1987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이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정치연합의 뿌리는 1987년 탄생한 평화민주당(평민당)이다. 그해 상도동계의 통일민주당이 YS(김영삼)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 동교동계가 DJ(김대중)을 대선후보로 추대하면서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DJ는 그해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민정당), YS(통일민주당)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11월 YS 서거를 계기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대권 도전에 실패한 YS의 통일민주당은 1990년 JP(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3당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이에 DJ는 재야 운동가를 영입해 1991년 4월 ‘신민주연합당’으로 야권을 재편성했다. 3당 합당에 반대해 통일민주당을 나온 ‘꼬마 민주당’과 그해 9월 합당하며 ‘민주당’을 탄생시켰다. 이로써 여당인 민자당과 야당인 민주당 체제가 된다.

1992년 민주당은 DJ를 대선후보로 내세웠지만 YS에게 패했다. 낙선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민주당은 이기택 체제로 돌입한다. 이기택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동교동계와 공천문제로 충돌하면서 갈등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계동계의 요청을 받은 DJ는 정계에 복귀한다. DJ는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때 동교동계 인사들이 집단 탈당해 새정치 국민회의로 넘어가면서 민주당은 제2야당으로 전락한다. 소수가 된 이기택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잔류 인사는 그해 12월 개혁신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됐다. 통합민주당은 또다시 나눠졌다. 이기택 조순 등은 1997년 민자당과 합당해 신한국당을 만들었다. 노무현 등 통합민주당 잔류파는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든 뒤 1997년 대선 국면에서 DJ와 손을 잡았다.

◇2002년 대선 노무현 승리... 열린우리당 창당


1997년 DJ는 자민련을 창당한 JP(김종필)와 DJP 연대로 대선을 승리했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로 16대 총선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DJ는 재야 세력 일부와 학생운동권 세력을 영입해 2000년 1월 ‘새천년 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2002년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이회창을 누르고 승리했다. 같은 기간 DJ는 아들들의 비리연루와 각종 게이트 의혹으로 탈당을 선언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 유시민계, 시민사회세력이 손을 잡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창당을 주도한 천신정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과 한나라당 개혁파인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김영춘 등이 열린우리당에 동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구민주계’만이 새천년민주당에 남았다.

‘뿔난’ 새천년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총선 직전에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것이 ‘선거 중립 위반’이라면 당시 한나라당과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오히려 국민 여론에 역풍을 맞아 새천년민주당은 2004년 총선 민주노동당에게 밀려 9석짜리 ‘미니당’으로 전락했다. 2005년에는 민주당으로 개명했다.

◇또 한 번 이합집산.... 대선 패배 뒤 안철수와 결합

‘지역주의 타파,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삼은 열린우리당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선 108명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면서 ‘108번뇌’라고 불릴 정도로 당내 내홍이 심했다. 2006년 지방선거 참패 하자 김한길 등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인사들이 탈당해 민주당 탈당파와 손학규 세력과 함께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이어 열린우리당과 합당해 제1야당이 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2007년 정동영 전 의원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한다.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은 2008년 잔류 민주당을 흡수해 통합 민주당이 됐다. 18대 총선에서 패하자 ‘도로’ 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노 전 대통령 서거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완승한다. 2011년 당 밖의 친노와 시민사회세력, 한국노총과 구성된 ‘혁신과 통합’을 손잡고 민주통합당을 만들었다. 민주통합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끈 새누리당에 고배를 마셨다.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친노계'가 주류로 급부상하며 문재인 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했지만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다. 대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은 2013년 5월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고 안 의원과의 '새정치연합' 실험 역시 실패하며 야권은 다시 '통합과 분열'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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