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플랫폼]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독립성

머니투데이 김시무 한국영화학회 회장 | 2015.12.11 07:21

<18>공적자금 지원의 딜레마

편집자주 | ‘비평의 플랫폼’은 공연, 전시, 출판, 미디어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이슈를 문화비평의 시각으로 의미를 분석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비평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평의 플랫폼’은 인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화비평웹진 '플랫폼'(platform.ifac.or.kr)에 게재된 글을 신문기사의 형식에 맞도록 분량을 줄인 글입니다. '플랫폼' 홈페이지에 오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는 지난 2015년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치러진 제20회 행사를 성공리에 마무리함으로써 이제 어엿한 성년기(成年期)에 접어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년 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난관을 극복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영화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오늘날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출범을 할 때부터 아시아 지역의 영화를 세계무대에 소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모토를 세우고, ‘아시아 영화의 허브(the Hub of Asian Cinema)’임을 자임해왔다. 그리고 그 같은 기조(基調)를 지난 20년간 견지해왔다. 올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14년 역대 최다 관객동원 기록인 226,473명을 뛰어넘는 227,377명으로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했고, 역대 최다 GV와 무대인사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컨퍼런스와 포럼 등을 통해 관객과 호흡하고 담론의 장을 확장하는 영화제로 거듭났다는 자체 평가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숙제를 남겼다. 그 가운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제영화제의 위상에 걸맞게 프로그램 선정에 있어서의 독립성의 확보다. 우리는 지난 2014년에 치러진 제19회 영화제 때 ‘세월호 참사(慘事)’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 2014)의 상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해당 영화에 대해서 “영화제에서 상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반대의사를 공식 표명했는데, 이는 그가 영화제조직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에 영화제집행위 측은 예정대로 상영을 강행했다.


한편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이런저런 사퇴압박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와 뜻을 함께하는 많은 영화인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으면서 제20회 영화제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그러던 지난 2015년 8월 6일 이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영화배우 강수연과 공동 위원장을 맡아 이번 행사를 치르게 되었음을 알렸다. 이렇게 해서 이 위원장에 대한 사퇴압박은 수그러들었고, 영화제 측과 부산시간의 갈등은 대략 봉합이 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제20회 영화제가 치러졌다.

결과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외형상 그 어느 해보다도 성공적이었다. 이용관 위원장은 영화제가 끝날 즈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 “카니발 축제의 성격과 비즈니스 마켓의 운영, 그리고 인문학적인 컨퍼런스 포럼의 개최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 영화제를 진행하는 전무후무한 영화제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10월 29일 부산의 지역신문인 『국제신문』에서 감사원의 ‘국고보조금 등 정부지원금 집행실태 감사결과 보고서’를 거론하면서 “감사원이 부산시에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전·현 사무국장 등 3명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는 내용을 전격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는 사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당사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관 흔들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오는 2016년 2월에 열릴 총회에서 이 위원장의 거취가 더욱 불투명해졌다.


영화제 자체가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인 만큼 프로그래머 개개인의 자의(恣意)와 취향에 따라서 프로그램 선정이 좌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원을 한다고 해서 프로그램 선정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영화제 집행부는 자율적으로 선정한 프로그램 한편을 외압으로부터 지켜냄으로써 영화제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것이 일회적으로 그칠 공산이 커졌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슨 말인가?

역시 ‘세월호 참사’ 이후를 다룬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Cruel State, 2015)는 지난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결국 여당의 불통(不通)과 야당의 무능(無能)으로 좌절을 겪는 지난 1년여의 고단한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제 측에서 <다이빙벨>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그 작품을 선정에서 의도적으로 제외시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위험한 가정을 해보고 싶어진다. 만약 내년 제21회 영화제 때 비슷한 유형의 영화가 출품 신청을 했을 때, 영화제 집행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이빙벨>의 학습효과를 영화제가 극복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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