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정규직? 청년세대 마지막 성공공식 무너뜨린 '30대 명퇴'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김민중 기자 | 2015.12.07 05:13

"비전 고민해봐라" 매일 퇴직면담, 제풀에 지쳐 퇴직… 전문가들 "기업들 법 사각지대서 '변형된 해고' 악용"

한 취업 박람회에서 취업상담을 받으려는 여성이 기업정보를 보고 있다. / 사진=뉴스1
#30대 A씨는 국내 명문사립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2000년대 후반 굴지의 대기업 B사에 입사했다. A씨는 일명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B사에 입사하기 위해 고시 준비에 가까운 취업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에 성실히 근무하던 A씨는 최근 결혼까지 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A씨의 삶은 일명 '희망퇴직 면담'이 진행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측은 대뜸 "회사가 어렵다"는 말을 꺼내더니 "경영상 부침을 겪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이어갔다. 이어 최근 부임한 수석(부장급)이 평가한 인사고과 결과를 문제 삼으며 이같이 상담하게 됐다고 전했다.

사측은 "생각할 시간과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희망퇴직을 받아들이지 않자 "다음에 얘기하자"며 면담을 이어갔다. 일주일에 한번 진행하던 면담 횟수도 점차 늘어갔고, 결국 하루 1차례 불려가게 됐다. 직접적으로 "퇴사하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나, 수차례 이어지는 면담에 A씨의 몸과 마음은 황폐해져갔다.

결국 A씨는 2년치 연봉과 퇴직금을 받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에 사인했다. A씨는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축하 인사 받던 일들이 모두 꿈같다"며 "이번 일로 우리 사업부의 20%에 달하는 인력이 떠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부 대기업들이 20·30대 정규직 사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을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장급 이상이 주요대상이었던 퇴직 압박이 전사원에게 확대돼 왕성한 경제활동을 벌여야 할 청년층까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

7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퇴직자가 신청한 실업급여 건수는 1276만2633건으로 전체의 38.68%에 달했다. 비정규직 근로자 상당수가 실업급여가 포함된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점을 고려할 때, 상당수의 20·30대 정규직 근로자가 퇴직 후 실업급여를 신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 측은 직원들에게 경영상 어려움을 알리고 희망퇴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는 입장이지만 근로자들은 극도의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등 사실상 퇴직을 종용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그룹 계열의 C사도 최근 전 직원(2012년 이후 입사한 신입사원 제외)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회사 측은 "최근 다른 계열사와의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보기 어렵게 됐고 실적부진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규모 부실이 수면 위로 노출될 위험이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 직원 D씨는 "한 동료는 수차례 압박을 받으면서도 지난해 결혼한 상황을 읍소하며 결국 살아남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상담을 받은 직원들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결국 상당수가 퇴직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희망퇴직 후 퇴직금과 위로금이 지급되지만 이들 청년 퇴직자들은 결혼과 육아 등을 코앞에 두고 이른 나이에 퇴직하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토로했다. C사의 퇴직 위로금은 수석 8000만원, 책임 7500만원, 선임 6000만원, 주임 5500만원으로, 한해 연봉이 별도로 지급되며 학자금 명목으로 자녀 1명당 1000만원이 추가로 주어진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희망퇴직'이 아닌 '절망퇴직'을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동법상 희망퇴직 강요를 규제하는 조항이 없다보니 기업들이 변형된 형태의 해고를 하고 있다"며 "경영상 긴박한 이유가 있다면 정리해고를 하면 되는데 이 같은 꼼수를 쓰는건 회사가 그만큼은 어렵지 않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기업의 경쟁적 인력감축이 '명문대 졸업, 대기업 입사'라는 청년들의 마지막 성공공식조차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업승계과정에서 전망이 없거나 차기 오너에 불리한 회사가 매각 대상이 되는데 이 때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이상의 인력감축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간사는 "그 결과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퇴직한 청년들의 삶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고 했다.

30대 청년 사원에게까지 명퇴를 종용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청년을 고용하겠다"며 대규모 채용 계획을 내놓는 것은 생색내기용이란 목소리도 높다. 정 간사는 "청년층의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을 고용한다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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