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플랫폼]공부하는 도서관? 놀이하는 도서관이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김우필 문화평론가 | 2015.12.04 07:32

<17>작은도서관 사업과 공동체 문화에 대하여

편집자주 | ‘비평의 플랫폼’은 공연, 전시, 출판, 미디어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이슈를 문화비평의 시각으로 의미를 분석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비평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평의 플랫폼’은 인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화비평웹진 '플랫폼'(platform.ifac.or.kr)에 게재된 글을 신문기사의 형식에 맞도록 분량을 줄인 글입니다. '플랫폼' 홈페이지에 오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보는 곳이 아니다. 책은 그 자체가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적 매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정서적 매체이다. 도서관에 사람이 가는 이유가 단지 책을 대출받거나 읽기 위해서라면, 그런 도서관을 대신할 수 있는 가상공간의 전자도서관은 무수하고, 지금도 계속 무섭게 확장 중이다.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어떤 정서적 아우라를 풍기는 사적 욕망의 공적 공유가 일어나는 곳이다. 주민자치센터나 초등학교 건물에는 어떤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지만 도서관은 결코, 강제적인 방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꺼이 공적 공간을 나만의 책상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공적 공간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이런 일을 즐기기까지 한다. 이럴 수 있는 공적 공간이 우리가 아는 공적 공간 중에 또 있을까? 더구나 걸어서 30분 이내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다. 2009년부터 본격화된 작은도서관 사업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작은도서관 이용자의 수는 한 개 도서관 일일 평균17명에 불과하다. 이를 한국인의 저조한 독서량 정도로 치부하기에 작은도서관 사업은,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너무나 비대하고, 공동체 문화를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조금은 초라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독서만능주의식으로 비판하거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촌스럽다. 책을 읽어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식의 의제는 도서관과 독서를 효용적 가치의 굴레에 가두고 만다. 책을 꼭 무슨 필요 때문에, 쓸모 있어서 읽는다는 생각은 독서를 교육적 방법론으로 제한해서 보는 반(反)문화적 태도다.

정부는 작은도서관 사업에 대한 최근의 실태조사에서 “작은도서관을 조성하기보다 바람직하게 운영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지원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생각에 화답하듯 도서관 실무자들과 전문가들 역시 구체적인 해법을 작은도서관 활성화와 바람직한 운영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실무자들과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작은도서관 사업이 현재 처해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임에는 분명하지만, 작은도서관 사업이 도시의 공동체를 건강하고 공고하게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엽적이고 현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작은도서관 중에서 약 30%를 차지하는 아파트 작은도서관(2014년 기준 1173곳)의 모습이 작은도서관의 현주소를 대신 보여준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작은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 아니다. 아파트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적 장식이거나 주민들 아이가 무료로 놀 수 있는 쉼터 공간에 더 가깝다. 좋은 아파트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속물적인 공간으로서 작은도서관을 잉태했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현재 작은도서관 사업은 독서, 교육, 공부라는 타성화된 시민의 책읽기 의식과 국민을 여전히 계몽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정부의 관료주의와 도서관을 부동산 전리품 정도로 욕망하는 대중의 속물주의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양적 팽창이 질적 향상으로 갈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이쯤에서 버려야 한다. 작은도서관 사업이 길을 잃게 된 것은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지 않고 낡은 표지판만을 맹목적으로 따라갔기 때문이다.


독서가 교육의 전부였던 시대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대중화되면서 종말을 맞이했다. 지금은 책 한 권의 지식보다 네이버나 구글의 검색 결과가 더 다양하고 정확한 시대다. 독서는 이제 교육에서 문화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사실 교육은 지식 전달자의 권위에 따르는 타율성을 본질로 한다. 반면 문화는 지식 생산자의 참여로 빛나는 자율성을 본질로 한다. 이제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읽는 곳, 아니 문화를 만들어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 작은도서관이 도서관 콘셉트 변화에 공공도서관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리적 장소에 책을 보관하고, 그곳에서 책을 읽으려면 공공도서관이나 대형서점이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기에 충분하다. 작은도서관까지 그런 기능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작은도서관은 단지 물리적 크기가 작은 도서관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가깝고 친밀한 공동체 공간으로 그 기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책이란 매체를 통해서 소통과 자치를 실현하는 문화 공간으로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이제 작은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기억을 보관하는 문화적 장소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작은도서관이 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공적 인프라로서 콘셉트를 바꿀 때가 온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조용히 침묵한 채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서로 공동체의 문제를 질문하고 토론하여 함께 답을 찾아가는 새로운 장소가 될 만하다. 이쯤 되면 작은도서관에서 학생들만 공부하지 말고 주민들 모두가 모여 놀아보는 건 어떨까. 이참에 이름도 작은도서관이 아닌 ‘놀이하는도서관’으로 아예 바꿔보는 건 또 어떨까.

베스트 클릭

  1. 1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2. 2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자녀장려금 신청하세요
  3. 3 "욕하고 때리고, 다른 여자까지…" 프로야구 선수 폭로글 또 터졌다
  4. 4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5. 5 "6000만원 부족해서 못 가" 한소희, 프랑스 미대 준비는 맞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