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타계 별세'… 죽음에도 급이 있다

머니투데이 나윤정 기자 | 2015.11.30 06: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주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나라가 숙연했고 지난 10일엔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타계'해 이슈가 됐다. 10월엔 천경자 화백이 '별세'했다는 소식에 마니아들이 비통해 했고 지난 7월엔 DJ 김광한이 '사망'해 많은 음악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유명인뿐 아니라 요즘같이 변덕스러운 날씨엔 종종 가슴 아픈 소식이 들린다. 바로 지인 혹은 친척들의 부고다. 얼마전 한 친구는 지인의 부친상을 알려야 하는데 어떤 단어를 써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지 난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부고를 알리는데 쓸 수 있는 단어가 많다. 서거, 타계, 별세, 영면, 작고… 똑같이 '죽음'을 뜻하는데 사람마다 쓰는 단어가 다르다. 뜻은 비슷하지만 '한끗' 차이 때문에 어떤 것을 써야 하나 고민에 휩싸인다. 일단 우리나라는 높임법이 발달했기 때문에 죽음을 말할 때도 가급적 높임말을 사용한다. 어떤 단어가 있으며 어떠한 뜻을 담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높임 없이 사용하는 단어로는 '사망'(보통 사람의 죽음, 일반적으로 죽음을 알리는 기사의 제목)과 '죽음'(죽는 일.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죽음을 높여서 말하거나 완곡하게 표현하는 단어들로는 서거, 별세, 타계, 영면, 작고 등이 있다. '서거'는 사거(죽어서 세상을 떠남)의 높임말로 주로 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 위대한 예술가 등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사람에게 사용된다. '별세'는 '세상을 하직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가장 많이 쓰인다. '타계'는 귀인의 죽음을 말하는데 서거를 쓸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에 적잖은 기여를 했거나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인물에 쓰인다는 점에서 별세와 차이가 있다. '영면'은 영원이 잠들다는 뜻으로 주로 유명한 사람의 죽음을 뜻하고 '작고'는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각 종교에서 죽음을 높이는 말도 있다. 가톨릭에서는 '선종', 개신교에서는 '소천'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승려의 죽음을 '입적'이라고 표현한다.


한자어 외에 동사나 관용구로는 '숨지다' '돌아가시다' '하늘나라로 가다' '밥 숫가락 놓다' 정도다. 땅보탬이라는 말도 있는데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힌다'는 뜻으로 국어사전에 버젓이 오른 우리말이다. 못다 적은 말까지 더하면 100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죽음을 표현하는데 이렇게 많은 단어가 필요한가. 실제로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말로 할 때 나이 어린 사람이면 '죽었다', 나이든 사람이면 '돌아가셨다'고만 해도 되고 글로 표현할 때는 앞에 제시한 단어만으로 충분하다. 100개나 되는 '죽음'은 명문일 뿐이다. 탄생의 기쁨이 있다면, 죽음의 슬픔도 존재한다. 죽은 이를 기리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은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죽음을 표현할 때는 말하는 이가 높여야 하는지 아닌지 상황을 구분하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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