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외환보유고가 바닥났습니다" YS 반응이…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정혜윤 기자 | 2015.11.23 11:19

[YS서거]다시보는 IMF, 긴박했던 1997년 재구성... "반면교사 삼아 구조조정 박차"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 무궁화대훈장이 놓여져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저작권자 &copy;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97년 1월23일 국내 10대 그룹 중 하나로 꼽혔던 한보그룹이 무너졌다. 자금 부족을 겪으면서도 무리하게 투자를 확대해서다. 단기간에 계열기업을 확장, 부도 당시엔 14개 기업을 거느리는 거대 기업이 돼 있었다. 한보그룹이 부도를 맞은 이후 3월19일엔 삼미그룹, 4월21일엔 진로그룹, 5월28일엔 대농그룹 등이 차례로 쓰러졌다. 22일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때 6개월 후 한국경제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외환위기 직전의 한국경제, '풍전등화'= 금융실명제 등 굵직굵직한 경제정책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김 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요청 등으로 한순간 무능력한 대통령으로 추락했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이 취임할때만해도 우리 경제는 좋았다. 1960년대 이후 지속된 경이적인 고도성장, 높은 저축률과 투자율, 두자릿수 수출 증가세 등 여건이 괜찮았다. 건실한 기초 경제를 감안하면 1997년말에 찾아온 IMF사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1997년 전후로 살펴보니 기업의 부채는 급격히 늘어나 있었고, 수익률은 크게 떨어졌다.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대규모 투자 자금을 차입금 형태로 조달한 탓이다. 자동차와 중공업 등 자본 집약적인 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제조업의 경우 전체 자산 대비 외부 차입 비중이 1994년 46%에서 1997년 57%로 상승했고, 기업의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은 과거 300%에서 1996년 말 400%까지 치솟았다. 특히 30대 재벌은 부채비율이 519%에 달했다.

외부 차입비중이 상승하면서 이지비용은 늘고 수익성은 떨어졌다. 1997년 기업 순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부도율도 상승해 부도업체수는 전년도 대비 50% 증가했다. 이로인해 은행들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를 계기로 은행들의 사정도 나빠졌다.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 기업과 은행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위기는 순식간에...IMF 구제요청 직전= 1997년 1~5월엔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이어졌다. 이들 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외화자금 시장 사정이 어려워졌다. 조흥, 상업, 제일은행 등 7대 시중은행의 단기외채 만기연장률이 1997년 1월115.4%에서 2월엔 94.2%로 하락했다. 3월엔 109% 수준으로 잠시 회복했지만, 4월엔 다시 94.9%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불안을 느낀 외국계 은행들이 대거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달러 부족으로 원/달러 환율은 1996년 말 844원에서 1997년 3월엔 897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6월엔 금융시장이 일시적 안정을 되찾았다. 정부가 △한보 부도대책(1월24일) △외자도입 확대대책(3월14일) △대외신인도 제고 종합대책(3월31일) △외자도입 규제완화(4월12일) △금융회사 부실채권 정리기금 설치(4월24일) △채권시장 개방조기확대(5월19일) △자산담보부증권 발행제도(6월12일) 등 대기업 연쇄부도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서다.

하지만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7월 기아그룹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다시 대외 신인도가 하락했다. 태국을 기점으로 발생한 동남아 외환위기와 기아 사태가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단기 외화자금 만기연장 등이 축소됐다. 외국 빚을 제 때 상환하기 힘든 금융회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9월11일 산업은행이 국제금융시장에서 15억 달러 규모의 외화채권을 발행하는데 성공한 것을 마지막으로 종합금융회사를 비롯한 국내 은행의 해외 차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종금사에서 시작된 외환부족 사태는 시중은행으로까지 급속히 확산됐다. 10월말 이후 금융·외환시장은 급속히 경색됐다. 외국인 주식 투자자금도 9~11월 3개월동안 19억1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한도 확대 등 증권시장 선진화 방안(10월13일) △외자유입 확대방안(10월16일) △채권시장 개방 및 현금차관 도입 등 금융시장 안정대책(10월29일)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11월19일) 등 선택 가능한 모든 금융·외환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원/달러 환율은 9월 914원에서 10월 965원, 11월 말 1164원까지 치솟았다.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보였다. 1996년말 332억4000만 달러였던 보유고는 이듬해 9월 224억2000만 달러로 줄더니 11월 말엔 72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결국 외환보유고가 급감하면서 환율이 일일 제한폭까지 상승, 외환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IMF 긴급자금 지원 신청, '단군이래 최대 위기'= 외화자금 사정이 최악의 상황으로 흐르자 11월초부터 외화 유동성 관련 긴급 회의가 열렸다. 7일엔 청와대 경제수석 주재로 외화 유동성 상황점검이 이뤄졌다. 9일엔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주재 대책회의를 통해 외환보유고 대책이 논의됐다. 13일에도 부총리 주재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 한국은행 총재와 각 기관 실무 간부들이 참석,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개혁 추진을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는 결국 11월16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를 비공식적으로 초청했다. 한국에 대한 긴급자금 지원에 대해 협의한 면담 결과를 강경식 부총리가 17일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김 전 대통령은 이틀 후인 19일 경제부총리를 교체했다. 임창열 신임 부총리는 취임 당일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21일엔 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키로 공식 발표했다.

우리 정부와 IMF간 자금 지원 협상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실무협상을 통해 IMF구제금융 지원 역사상 최단 시일내 협상이 마무리됐다. 정부와 IMF측은 12월3일 350억 달러 지원 약정과 그에 따른 한국 정부의 이행사항 등을 담은 의향서에 서명하고 임창열 전 부총리가 그날 밤 10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로써 1997년 1월23일 한보그룹 부도사태에서 시작된 한국의 금융시장 불안은 7월 발생한 동남아 외환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외환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IMF의 지원을 받은 한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했다. 12월18일 가용 외환보유고가 39억4000만 달러까지 감소해 국가 부도사태까지 갔지만, IMF 지원을 통해 신용도 회복 등으로 이를 극복했다. 1998년 초 단기외채 만기연장에 성공했고, 외평채 발행에도 성공했다. 또 IMF 프로그램 실행을 통해 각종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국민들은 고통을 감내하며 위기를 넘어섰다. 1999년 9월18일 9개월 앞당겨 보완준비금융 135억 달러를 조기 상환하면서 "한국이 IMF 위기를 극복했다"는 메시지를 국제 금융계에 전달했다.

◇"정부 정책은 타이밍, 구조조정 철저히"= 전문가들은 최근 한계기업과 가계부채 등 심각한 문제들 탓에 경제위기론이 나오고 있지만, IMF시대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구조조정 등 당면한 과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정부 정책이 뒷북을 치면 IMF와 같은 위기는 또 찾아온다고 지적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997년과 지금은 여러 상황에서 많이 다르지만, 분명히 그때 당시를 반면교사 삼을게 많다"며 "그때 이후로 외환보유고를 잘 관리해서 위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건 긍정적이지만, 구조조정 등 정부 정책이 보다 앞서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그때와 다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문제와 같은 경제·사회적 불안이 커졌다"며 "정부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멀리 볼 수 있어야하고, 지금 필요한 정책들이 적절하게 나와야한다"고 덧붙였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IMF시대랑 지금은 경기 구조 자체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 경제에 주는 교훈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도 좋지만, 본질적인 경제 구조개혁을 해야한다"며 "금융부문의 취약성도 여전하고 공공부문 개혁도 필요하고 4대 부문 구조개혁이 구조개혁의 첫 출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경제가 어떤 측면에선 IMF때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며 "정부와 기업, 국민 등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에 따라 우리 장래가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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