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인권변호사 故 조준희 변호사 ‘추모의 밤’ 열려

뉴스1 제공  | 2015.11.20 20:55

“어둠의 시대를 밝힌 故 조준희 변호사, 민주인권 세상에 영면하소서”
장례는 ‘민변장’… 고인이 변호맡은 시국사건 피고인 및 재야 변호사 등 다수 참석해 추모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일 서울 삼성병원 영결식장에서 열린 故 조준희 변호사 추모식© News1

1세대 인권변호사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초대 대표를 역임한 고(故) 조준희 변호사의 추모식이 열렸다.

민변은 20일 저녁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장에서 고 조준희 변호사를 추모하는 '추모의 밤'을 열었다. 추모식이 열린 영결식장은 고인을 기리는 추모객들로 가득 찼다.

고 조 변호사와 동시대를 살아낸 원로변호사부터 생전 고인의 활동을 존경했던 소장 변호사들까지 이날 추모식에 참석했다.

추모식은 "한 시대를 어렵게 견뎌온 변호사님을 보내는 자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추모식은 한 사람을 떠나보낸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고인의 뜻을 간직하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조영선 민변사무총장의 인사말에 이어 고인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이상호 민변 부회장이 고 조준희 변호사의 약력을 소개한 뒤 고인을 기리는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고 조 변호사의 약력과 생전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 및 고인의 육성이 담겨져 있는 추모영상이 상영되자 장내는 이내 숙연해졌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추모객들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마음속에 오래 남겨두려는 듯 일어서 두 손을 모으고 추모영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한택근 민변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 변호사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 후반 군사독재시절 시국사건을 도맡아 왔다"며 추모사를 시작했다.

한 회장은 "유일무이한 인권변호사 단체로 자리매김한 민변의 발전에는 고인의 역할이 지대했다"며 "민변사상 최초로 민변장으로 고인의 가시는 길을 추모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 회장은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향상을 위해 계속 진전하겠습니다. 변호사님 편히 가십시오"라는 마지막 고인에 대한 마지막 인사말을 건네며 아쉬움에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민변 초대 회원인 박연철 변호사는 고인의 생전을 추억하며 "(고인이) 고난을 겪는 이들을 변론하다 스스로도 고난에 빠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도 추모사 낭독 도중 고인이 떠나감을 아쉬워하는 목메임을 숨기지 못했다.

이어 이종걸 새정연 원내대표,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긴급조치9호 위반사건 피고인으로 생전 고인의 변호를 받았던 이병호 서울대 민주동문회 공동회장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이 회장은 피고인 신분으로 위축되고 폭력에 시달리던 순간에 고인이 건넨 "재판이 시작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폭력은 없을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해라"라는 말을 수십 년이 지난 오늘 다시 되새기며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조영선 민변 사무총장이 추모시를 낭독했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사이로 인권변호사 4인방 가운데 한명인 홍성우 변호사의 호상인사가 이어졌다. 홍 변호사는 "조준희 변호사는 인권변론의 중심에서 정도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조 변호사는) 법조계 안에서도 꼿꼿한 선비였고 세련된 신사였다”며 “인권변론의 격조는 그의 인품의 힘입은 바가 적지않다"고 고인을 기렸다. “오늘 이 자리에 조 선배가 그리워 하는 얼굴들이 많아 가시는 길에 이 자리를 둘러보고 가실 것”이라는 말에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추모식은 유족인사와 참석자들의 헌화로 마무리 됐다.


1세대 인권변호사 조준희씨. (민변 제공) © News1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조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인 1959년 11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서울지법 판사로 재직하다가 유신독재 시절인 1971년 변호사로 전업했다.

조 변호사는 3·1 민주구국선언사건, 리영희·백낙청교수 반공법위반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 시위사건, 와이에이치(YH) 노조 신민당사 농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또 1980년대에는 부천서 성고문사건, 김근태 고문사건, 미문화원점거 농성사건, 말지 보도지침사건, 남민전사건 등을 변론했으며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특별조사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한승헌, 홍성우, 이돈명,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민변의 모태가 된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만들었다. 이어 1988년 민변을 창립하면서 초대 대표를 맡았다.

또 1994년 인권변호사로는 처음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으며 2001~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원회 위원장, 2005~2008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2003~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빈소는 삼성의료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민변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함옥경 여사, 아들 용석(법무법인 천우 변호사)·용욱(영국 닛산 디자이너)씨와 딸 혜진(미국순례자의신학대학 교수)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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