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뭐길래' 종이 쇼핑백이 수만원?

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 2015.11.13 10:17

중고거래사이트 하나당 1만~3만원 거래…소비자 "자기만족·중고판매목적" 전문가 "과시문화·보상심리"

12일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 따르면 현재 유명 브랜드 종이쇼핑백은 하나당 1만~3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직장인 구자경씨(27·여)에게 명품 쇼핑백은 명품 가방 못지 않게 아끼는 물건이다. 손에 들기 힘든 구두나 옷가지를 유명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종이쇼핑백에 넣어 다니면 괜스레 자신감이 생긴다. 명품 가방 구입시 딸려오는 쇼핑백을 애지중지 다루는 것은 물론 최근엔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명품 쇼핑백만 따로 두어개 더 장만했다. 구씨는 "부피가 크거나 가방에 상처낼 수 있는 물건은 쇼핑백에 넣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명품 쇼핑백 대신 시장에서 볼 법한 종이가방을 손에 쥐고 있을 땐 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오유미씨(26·여)는 최근 원하는 명품 쇼핑백을 어렵사리 구입했다. 용돈이 떨어지면서 갖고 있던 명품 가방을 중고로 내놨는데 구매자가 "쇼핑백이 없으면 제값을 쳐주지 않겠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크기와 색상까지 까다롭게 요구하는 탓에 꼭 맞는 쇼핑백을 찾기까지 수일이 걸렸다. 오씨는 "명품 가방을 되팔 때 가방 뿐만 아니라 쇼핑백까지 모두 갖춰야 제값을 받는다"며 "명품을 사는 이들에게 명품 쇼핑백 가치는 종이가방 그 이상"이라고 밝혔다.

명품을 선호하는 문화가 종이가방까지 번졌다. 중고로 내놓을 때 가방과 함께 구색을 맞추려거나 또는 단순히 자기를 과시하려는 이유에서 명품 쇼핑백을 찾는 이들이 적잖다. 목적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명품이 주는 보상심리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13일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 따르면 현재 유명 브랜드 종이쇼핑백은 하나당 1만~3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 패션브랜드 샤넬의 경우 일반 종이쇼핑백은 2만원에, 고유문양인 까멜리아(동백꽃) 장식이 추가된 쇼핑백은 3만원에 팔리고 있다.

이밖에 명품으로 불리는 대개 브랜드 쇼핑백은 평균 2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일반 종이봉투가 100원인 것과 비교하면 200배 가량 비싼 셈이다. 최근 화제가 된 H&M 발망 쇼핑백 가격은 5000~1만원 선이다.

대다수 소비자는 자기 만족과 과시를 위해 명품 쇼핑백을 구입한다. 명품 쇼핑백은 명품 가방을 살 때만 함께 증정하는 비매품인데, 가방 없이 쇼핑백만 들고 있어도 남들에게 명품을 소비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대생 이주영씨(22·여)는 "명품 쇼핑백은 시중에서 따로 구할 수 없는 만큼 희소성을 가진다"며 "들고 있으면 명품 가방을 실제로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데다 어설픈 짝퉁은 쓰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자주 메고 다닌다"고 말했다.

중고시장에서 명품 쇼핑백은 구매자는 물론 판매자들도 따지는 품목이다. 명품 가방이 중고로 거래될 때 이른바 '풀셋'(완제품)을 갖추느냐에 따라 가격은 10만~30만원 차이가 난다. 풀셋에는 가방에다 더스트백(먼지막이용 가방)과 쇼핑백이 포함된다.


직장인 김희영씨(29·여)는 "다른 종이봉투는 다 버려도 명품 쇼핑백만은 고이 모셔놓는다"며 "되팔 때 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중고 가방을 구입할 때도 명품 쇼핑백을 함께 파는지는 꼭 물어본다"고 밝혔다.

이어 "생각보다 명품 쇼핑백을 들고 다닐 일이 많다"며 "가방을 들고 다니다가 어느날 쇼핑백도 들어줘야 남들이 '중고가 아닌 새제품을 샀구나'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풀셋을 원하는 동시에 풀셋이 제값을 받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소비현상을 두고 우리사회 내 고유한 과시문화와 더불어 경제침체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발망 대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되팔기 여부를 떠나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명품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며 "명품 쇼핑백을 사는 것은 내가 평소에도 명품을 취급하고 다닌다는 일종의 간접적인 과시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어려울 경우 사람들은 압박감과 중압감에 쌓여 심리적 결핍을 느낀다"며 "결핍은 충족해야겠고 형편은 넉넉지 않을 때 명품 쇼핑백은 적은 비용으로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상품"이라고 덧붙였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한국에선 소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대체하려는 과시문화가 강하다"며 "사회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명품을 통해서라도 상류층에 속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한다. 일반 봉투보다 명품 쇼핑백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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