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통 음식 빨간 수프 “보르쉬”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 2015.11.13 07:44

[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80>


집 앞의 키 큰 나무들이 봄부터 가을 초까지 녹색의 향연을 벌일 때 자주 눈길을 주었다. 초록의 잎새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눈을 쉬게 했는데 가을로 넘어오자 하루가 다르게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변해가는 자연의 이치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세상사는 재미 중 하나다.

요 며칠 오랜만에 듣기도 반가운 비가 내리고 빗소리도 음악처럼 들리는데 바람은 엄청나게 세게 불었다. 큰 나무들이 허리가 휘게 흔들거리더니 노랑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있는 것을 어느 한 순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허무함 그 자체였다. 비는 오고 바람이 불고 다 떨어진 낙엽들이 즐비하게 쌓인 것을 보는 것은 이별의 아픔처럼 진한 서글픔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음식을 먹을 때 뜨거운 것을 찾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주로 매운탕이나 지리, 오뎅 국물 등을 찾고 매운 라면 국물도 맛있게 먹는다. 가을이 오면서부터 여름보다 훨씬 빈번하게 뜨거운 국물이 생각나고 문득 러시아에서 먹었던 수프가 떠올랐다. 그래서 며칠 전에 러시아의 수프를 만들어 먹었는데 오랜만에 맛보아 그런지 매운탕 맛과 색달랐다.

러시아 대표적인 전통 음식 중의 하나인 '보르쉬'는 전 러시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고 일년 내내 질린 기색 없이 먹는 수프다. 한국인들이 밥상에 꼭 국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은 삼시 세끼보다 점심 때 무조건 수프를 먹는 습관으로 길들여져서 있다. 집이나 식당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게 빨간 색의 수프 바로 보르쉬다. 왜 빨간 색이냐 하면 빨간 무(비트)와 토마토가 꼭 들어가 색깔을 내기 때문이다.

보르쉬는 돼지 뼈를 푹 고와 낸 국물에 빨간 무와 감자, 양파, 당근, 양배추를 넣고 오랫동안 끓인다. 물론 마늘도 들어가고 후추와 토마토 소스도 첨가해 뭉글게 끓여진 수프는 붉게 물들고 식욕을 자극한다. 이렇게 잘 끓여진 보르쉬에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것은 하얀 색의 스메타나와 향채중 하나인 우쿠릅이다. '스메타나'는 우유로 만든 사우어크림인데 러시아 사람들의 거의 필수품이다. 러시아는 추운 날들이 많기 때문에 유제품이 많이 발달되어 있으며 스메타나 말고도 케피르라는 사우어밀크와 치즈, 아이스크림 등을 즐겨 먹는다. 이렇게 보르쉬는 영양을 듬뿍 담고 있어 활동이 왕성한 낮 시간에 즐겨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빨간 색의 보르쉬에 하얀 색의 스메타나가 들어가면 분홍색으로 희석되어 나온다. 뜨거운 보르쉬는 메인 음식을 먹기 전에 꼭 나오는데 추워 얼어있던 몸과 마음이 보르쉬를 먹는 순간 나른하게 풀어지고 긴장감을 무장해제 시키는 동시에 온 몸이 훈훈해지고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보르쉬를 먹고 나서 육류나 소시지, 빵들을 먹지만 같이 먹어도 무방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도 이 수프에 넣어 깨끗이 먹어 치우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도 하고 얼굴에 화색이 만연하다.

빨간 색의 수프 보르쉬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받는 음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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