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8배 이익' 챙긴 투자자는 누구?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 2015.11.08 10:00

[행동재무학]<116>주식투자는 '카지노 도박' 아닌 '재미없는 일'

편집자주 |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한미약품이 상한가라고? 나도 한미약품 주식 샀었는데...이익 조금 내고 팔아 버렸어. 정말 아깝네."

6일 5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 체결 소식에 한미약품이 상한가에 올랐다. 한미약품 상한가 소식에 얼른 한미약품에 투자했다는 지인 생각이 나서 연락해 봤더니 이미 팔아 버렸다는 아쉬움 섞인 답변만 들려줬다.

한미약품이 올해 들어 연달아 굵직한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키자 주가가 지난 1년 동안 8배 넘게 폭등했다. 그래서 한미약품 주식을 산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데 한미약품에 투자해서 8배가 넘는 이익을 고스란히 챙긴 투자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려면 지난 1년간 주가 변동에 흔들리거나 서두르지 않고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한미약품 주식을 산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팔지 않고 8배의 이익을 챙긴 이들은 극히 드물다. 많은 이들이 주가가 조금 오르자 적은 이익을 남기고 서둘러 주식을 팔아 버렸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8배가 넘게 오른 한미약품 주가를 보면서 씁쓸해 한다. 무엇이 그들을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주식시장은 '자본가의 카지노(capitalist casino)'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쉽게 주식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주식투자가 온라인 게임이나 카지노 도박(gambling)과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중에서도 주식 데이트레이딩은 단연 도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데이트레이더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스크린을 쳐다보며 아주 적은 주가의 오르내림을 두고 베팅을 한다. 만약 데이트레이더가 지난 1년간 한미약품을 하루에 수 십번씩 샀다 팔았다를 반복했다면 지금까지 8배가 넘는 이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카지노에서 밤새 도박을 하면 하우스만 돈을 번다는 말이 있듯이, 데이트레이더도 결국 크게 번 것 없이 증권사 배만 불려줬을 것이다.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치유하는 모임에서 데이트레이더와 같은 주식중독자에게 권하는 치유법 중의 하나는 주식을 최소 18개월 동안 팔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1년 전 한미약품 주식을 산 뒤 이 치유법에 따라 주식을 팔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는 지금쯤 8배가 넘게 불어난 주식계좌를 보면서 흐뭇해 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한미약품 주식을 산 뒤 조급하게 팔아버린 이유는 주식투자를 마치 카지노의 도박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카지노에서처럼 지금 베팅하면 바로 승부가 나야 한다. 그래야 또 베팅을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답답하다. 심하면 불안감에 휩싸이고 안절부절 못한다.

몇 년 전 한 의료학회에 발표된 논문에는 우리나라 주식투자자 가운데 4분의1이 주식중독증에 걸려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주식중독과 도박중독은 별 차이가 없다.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전 MIT교수는 "주식투자는 마치 페인트를 칠한 뒤 마르는 것을 지켜보거나 잔디 씨를 뿌린 뒤 자라기를 바라보는 일"처럼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재밌고 흥분되는 일을 원한다면 주식시장이 아닌 카지노나 경마장에 가야 한다고 일갈한다. 즉 주식투자는 도박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주식투자는 새뮤얼슨 교수의 충고와는 반대로 점점 더 변덕이 심하고 흥분되는 일로 변질되고 있다.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빨리 거래해서 이익 챙기고 또 거래를 해야 직성이 풀리지, 답답하고 지루하게 언제 1~2년을 기다리냐 말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 조폭과 기업인, 운동선수 등이 대거 가담한 수백억원대의 해외 원정도박 사건이 검찰에 적발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이들 가운데는 ‘카지노 게임의 왕’으로 불리는 '바카라' 게임에서 1회 베팅액을 2~5배로 높여 도박을 벌인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베팅액을 높이면 30초 게임 한판에 적게는 6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을 일시에 딸 수도 잃을 수도 있게 된다.

그런데 베팅액을 올려 빨리 한탕을 거두려는 행위는 카지노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주식시장에서도 2배, 3배 레버리지 ETF로 주가 변동에 2~3배를 불려 베팅을 한다. 카지노에선 베팅액을 올리는 게 불법이지만 주식시장에선 현대 금융공학의 합법적 상품이다.

레버리지 ETF의 늪에 한번 빠진 사람들은 일반 주식엔 흥미를 잃는다. 단 한번에 3배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데 뭐하러 답답하게 일반 주식을 매매하겠는가. 만약 주가가 예상과 반대로 움직일 경우 3배의 손실을 입을 만큼 위험이 높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높은 기대수익만 바라볼 뿐이다.

게다가 그냥 단순하게 주가가 오를 때만 돈을 버는 건 답답하니까 아예 주가가 내려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상품마저 만들어냈다. 이제는 단순하고 지루한 투자를 하면 원시인 취급을 받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현물) 거래뿐만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선물) 거래에까지도 베팅을 할 수 있고, 미래에 오르고 내릴 것에 대한 베팅(=옵션)도 가능하다. 이들 파생상품은 자연스럽게 초단기 베팅을 부추긴다. 재무학에서 이들을 투기(speculating)라 부르지만 이들을 잘 알아야 비로소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주식투자를 해도 신용으로 주식거래(=마진거래)해서 레버리지를 극대화해야지 자기 돈만으로만 하면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 요즘은 금리도 낮고 신용대출 받는 것도 너무나 쉽다. 돈을 빌려 주식에 베팅하는 건 이젠 터부시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추천되고 있을 정도다.

우리 주위엔 이처럼 주식을 투자(investing)라는 명목 아래 도박(gambling)이나 투기(speculating)하듯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지난 1년새 8배 넘게 오른 한미약품을 카지노 도박하듯 투자했다면 결코 8배의 이익을 챙기지 못했다. 한미약품 투자에서 8배 넘는 이익을 얻은 사람은 '타짜'가 아닌 도박을 전혀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한미약품이 8배가 넘게 오르자 이제 증권업계는 제2의 한미약품을 찾겠다고 난리다. 그러나 아무리 제2의, 제3의 한미약품을 찾는다 해도 카지노 도박하듯 투자하면 결코 8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한다. 우량한 종목을 찾지 못해서 주식에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재미없고 지루한 투자가 아닌 한탕주의 카지노 도박을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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