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논쟁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 2015.11.03 19:13

[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4)리버럴리스트의 원칙-배경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발표한 3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찬반 집회가 잇따랐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회원들이 같은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강행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왼쪽 사진). 종북좌익척결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 행정고시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5.11.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서로 상반되는 가치로 부딪힌다. 국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검인정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이들 교과서가 북한을 사실상 추종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지나치게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서술에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적 가치로 추구하는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유주의 사관'에 기반해 북한의 인권과 전체주의 사회 문제를 짚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 뿐 아니라 일제 식민 시대와 분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산업화 과정 등에 대한 역사관도 비슷한 양상으로 충돌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보면 산업화와 경제성장 등 우리 근현대사의 '밝은 면'보다는 식민 지배와 분단 등 '어두운 면'을 부각하는 이른바 '자학사관'을 형성한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국정화의 주요 논거로 사용되는 이러한 주장에 반대론자들은 민족의 비극을 덮고 친일·독재 세력을 미화하려고 맞서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자유주의'로 규정한 진영 새누리당 의원은 이와 달리 민족주의가 자유주의를 비롯한 모든 이데올로기의 바탕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분단이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자유주의를 억압당한 것이란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서구 근대 사회를 형성한 주요 사상적 기반이 자유주의와 함께 민족주의에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일 것이다. 미국의 독립혁명의 경우 영국의 강압적인 중상주의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유주의 사상이 토대가 됐지만 독립적인 국가 정체성을 확보하고 그에 따른 자결과 자율에 따른다는 민족주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18세기 이탈리아 통일이나 프랑스혁명 전쟁 등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같은 사상적 흐름은 20세기 들어 2차대전 후 탈식민지화 등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자유주의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갈등을 빚어내더라도 이것이 일정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민족주의가 공동체적 가치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20세기 후반 탈근대화와 세계화 바람에 따라 민족주의는 배타적·고립적 의미로 전용되고 다문화를 이루는 오늘날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역사교과서 논쟁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이루고 있는 남한과 북한을 '철 지난' 민족주의를 적용해 하나의 민족 역사로 묶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전쟁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민족주의는 무조건 배제해야 한다는 시각은 다소 위험하다. 일본 역시 '자유주의 사관'에 기초해 전범국가의 오명을 가리려는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고 있지만 냉전 구조를 탈피해 일본이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는 '신(新) 민족주의'를 껴안는 형태다. 주변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켜 패권국 도약에 이용하려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이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의 재정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도 향후 통일한국의 정체성 확립 등 공동체적 가치로서 민족주의의 효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진영 의원이 민족주의를 ‘나를 지키되 남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존의 이념’으로 정의했듯 자유주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민족주의 가치를 모색하는 정치권의 고민이 절실하다.

균형잡힌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균형잡힌 사고의 틀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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