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타임루프'와 같은 사회 안전망 제도가 있어야 한다."
SF(공상과학)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속 과학이론을 소개하러 나온 이종필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는 '무한 반복되는 시간 안에서 전투 경험치를 쌓는다'는 영화 속 설정을 두고 이 같이 말했다.
SF영화를 관람하고 과학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SF 시네마&토크'가 27일부터 내달 1일까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다.
'인셉션·썸머워즈·매트릭스·픽셀' 등 대표적인 SF영화를 소재로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한재권 한양대학교 융합시스템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상욱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등 과학자들이 한 작품씩 맡아 대중들에게 영화 속 숨은 과학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 중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에 정통한 이종필 교수의 강연을 정리했다.
톰 크루즈 주연의 SF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과 맞서 싸우는 줄거리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타임 루프'다. 자고 일어났는 데 오늘이 계속 반복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런데 주인공 톰 크루즈는 전날 겪은 경험이 체화돼 있다. 타임 루프가 반복되면서 톰 크루즈의 경험치도 늘어난다.
타임 루프는 컴퓨터 오락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특정 지점에서 세이브(게임내용 저장)을 하게 된다.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 세이브된 시점부터 전개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영화에서처럼 과거로 가서 과거를 바꿔 미래에 변화가 생기도록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풀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다르다. 단순히 과거로 가서 과거를 바꾸는 이런 문제가 아니다. 가장 근접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이론이 ‘양자역학’에 기반한 '다세계 해석'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선택의 순간에 왔을 때, 우리가 A를 선택하냐, B를 선택하냐에 따라서 각각의 세계가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동전을 던졌는 데 우리 세상에서 동전의 앞면이 나왔다면, 동전의 뒷면이 나온 다른 세상도 동시에 펼쳐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1990년대 초반, 인기 개그맨 이휘재씨가 출연한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에서 보듯 하나의 에피소드 내에서 A 또는 B를 선택할 경우, 스토리가 독자적으로 각각 전개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60년대 미국의 휴 에버렛이라는 과학자가 '다세계 해석'이란 솔루션을 제시했다. 그는 선택의 상황에 놓였을 때 이미 세계는 여러 갈래로 가능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주장은 요즈음 학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다중우주'를 설명할 때 유력한 근거로 제시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톰 크루즈가 부대에서 깨어나는 지점, 즉 모든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미 여러 가지 가능한 세계가 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각의 가능한 어떤 역사적 줄기들이 쭉쭉 뻗어 나가야 하는 데, 뭔가 우리가 모르는 이유 때문에 한번 갔다가 어떤 이상한 일이 생겨서 특정한 지점으로 돌아와 반복이 되는 현상. 그것을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이벤트와 연결해 풀었다. 이 영화의 설정이 엉터리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게임속 '세이브-로드'와 같은 사회 제도 필요
영화를 보면서 인생도 '세이브-로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같은 얘기지만 저는 사회적 시스템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선진국에선 '세컨드 찬스'를 준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보자. 사업에 실패를 하더라도 게임에서처럼 예전 시점으로 100% 완벽하게 복구하기는 힘들어도 어느 정도 만회하고,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가 그를 다시 일으킨다.
그러니 청년들이 과감하게 도전하고, 창업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게임 오버다. 안전망이 없다. 그런 현실이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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