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내려도 명품 가격은 그대로…명품의 경제학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 2015.10.31 06:30

[같은생각 다른느낌]수요의 가격탄력성 작은 경우 세금인하 효과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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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까르띠에, 프라다 등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여 온 이유는 인간의 심리적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명품브랜드들이다.)

이런 인간의 행동이 나타나는 동기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욕구의 단계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매슬로우는 1단계 생리적 욕구가 만족이 되면,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4단계 자기존중의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로 단계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부유층은 순차적 단계를 거쳐 4단계 자기존중의 욕구 내지는 5단계 자아실현 욕구로 명품을 구입한다고 할 수 있다. 명품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입하는 것은 인간 욕구의 단계적 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블런은 경제학적 시각에서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1989년에 발표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며 명품이나 사치품 구매를 '과시적 소비' 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유한계급의 대표적 소비사례로 든 것이 당시 상류층에서 사용하던 ‘은수저’이다. 은수저는 가격이 비싸고 실용성이 떨어져도 상류층이 구입을 마다하지 않으며 오히려 값이 비싸다는 점이 구매를 꺼리기보다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아름답고 품질이 좋다는 가치를 부여한다.

이렇게 명품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런 현상이든 비합리적인 과시욕이든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소비를 부추겨서, 때로는 부자들의 사치와 약탈의 도구로 때로는 혁신과 창조의 수단으로 명품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명품이 존재했다. 당시 여성들의 명품은 가채, 즉 머리에 쓰는 가발이 신분적 우월감을 드러내고 부유층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가채 중에 비싼 것은 논밭을 몇 마지기 팔거나 심지어 집 10채의 가격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가채의 지나친 사치가 문제가 되자 영조 때에 이르러 가채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시계가 신흥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등장해 시계제조업이 발달하게 됐고 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를 시작으로 후에 영국 런던과 스위스 제네바로 중심지가 이동됐다.

근대에 들어와서 명품은 서양을 중심으로 창의적인 디자이너에 의해 개발되고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는 오명을 가진 코코 샤넬(Coco Chanel)은 1910년 하우스 오브 샤넬을 설립하여 샤넬스타일이라는 그녀의 독창적인 시그니처 룩을 선보였다. 코르셋을 없애고 저지 소재의 짧은 스커트와 스포티한 슈트를 선보여 여성 해방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대표적 아이템인 핸드백은 어깨 끈을 사용하여 손으로 드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했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érmes)에 의해 귀족들의 마구용품으로 시작한 에르메스는 실크스카프, 넥타이, 가죽백, 향수 등 14개 라인으로 넓혀왔으며,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꿰메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56년 그레이스 켈리가 들면서 유명세를 탄 켈리백을 시작으로 1984년 당시 CEO였던 장 루이 뒤마가 영국의 영화배우 제인 버킨을 만나 탄생시킨 버킨백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만 구할 수 있는 명품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악어백 제조과정에 충격을 받은 제인 버킨이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하는 등 동물학대의 어두운 면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명품브랜드가 나오기 위해서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열게 하는 ‘명품의 그 무엇’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명품의 희소성과 독창성을 드러내는 가치와 철학에 기반하며 높은 판매가격은 명품임을 확인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즉, 명품의 소비는 저렴한 가격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8월6일 기획재정부는 '2015년 세법개정안' 을 발표하여 경제 활력 강화를 위해 소비여건을 개선하고 국내 명품 브랜드를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명품가방이나 시계 등에 붙었던 개별소비세(20%)의 기준가액을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해 세금을 줄여줬다.

예를 들면 판매가 1000만원인 명품가방의 수입가가 500만원이라고 하면, 500만원 수입가를 기준으로 200만원을 초과하는 300만원에 대해 개별소비세 60만 원(20%), 교육세 18만 원(개별소비세의30%), 부가가치세(개별소비세와 교육세 합계액의 10%) 7만8000원 합해서 85만8000원의 세금을 부담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최근 샤넬은 세금 인하 혜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글로벌 가격정책이라는 미명하에 11월1일부터 일부 인기품목 가격을 오히려 최대 7%나 올린다고 하여 당황스러움을 안겨주고 있다. 샤넬은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지난 3월에 가격을 인하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환율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세금절감의 효과를 그대로 독차지하고 있는 해외명품 브랜드들은 여전히 판매가격을 내리지 않거나 오히려 올린다고 하여 의도와 딴판으로 흐르고 있다.

이런 이유는 명품은 다른 사치품과 달리 수요량의 변화율을 가격의 변화율로 나눈 값인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아주 작아서 가격을 올리거나 내려도 수요량이 급격히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품이 가격을 내려 흔한 상품으로 인식되면 수요는 그다지 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해 전체 수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명품 판매자들은 고급화와 차별화를 통한 고가 정책을 펴기 일쑤다. 개별소비세를 인상할 때는 인상폭을 판매 가격에 바로 적용하고 인하시에는 가만히 있어도 세금 감소분만큼 고스란히 업체의 이익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세수증대를 위해 국민건강을 볼모로 서민들이 많이 애용하는 담배는 가격을 100% 가까이 올린지 열 달이 돼가는데 수요는 다시 요요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작년보다 세금만 최대 5조 원 가량 더 걷혀 올해 11조 원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내 소비 진작 효과도 없고 국내 명품브랜드 육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해외명품에 세금을 인하하는 대조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고급 명품 브랜드는 독창적인 제품과 가치를 개발해 오랜 세월 그 명성을 인정받을 때 가능한 것이지 세금을 인하해 준다고 단기간에 육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금인하로 국내 소비 진작이나 명품 브랜드 육성을 하겠다는 정책의 목표가 실효성이 없다면 해외 명품업체 배만 불리는 세제 개편은 지금이라도 원상회복 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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