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장 살인 유무죄 가를 '미필적 고의', 종이 한 장의 딜레마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 2015.10.26 05:13

[고의와 과실 사이<上>] '미필적 고의'냐 '인식 있는 과실'이냐… 전문가들 "종이 한 장의 차이"

편집자주 | 우리 법은 고의로 죄를 지은 사람보다 과실을 저지른 사람에게 훨씬 관대하다. 그런데 고의와 과실을 나누는 기준은 매우 미묘해 논란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이준석 세월호 선장 사건도 고의와 과실 사이에서 1·2심 판단이 엇갈린 대표적 사례다. 고의와 과실의 경계에 있는 '미필적 고의'의 뜻과 기준에 대해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어봤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 /사진=뉴스1

#1. 40대 회사원 A는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대리운전 기사 B를 불렀다. 취한 A가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며 욕설을 퍼붓자 B는 갓길에 차를 대고 빠져나왔다. A는 후진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아 B를 들이받았고 B는 숨졌다. 1·2심 재판부는 A에게 B를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단 이유로 살인죄에 대해 무죄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A는 결국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 C는 연인 사이였던 D(여)가 결혼한 후에도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D가 남편에게 폭행당했다는 말을 들은 C는 복수를 다짐했다. C는 D의 남편 집 근처에 숨어있다가 미리 준비해간 망치로 머리를 내리쳤고, 몸싸움을 벌인 끝에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혔다. 검찰은 C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하급심 재판부는 고의성이 없다며 상해죄를 적용했다. 대법원에선 망치가 사람의 생명에 치명적 해를 가할 물건인 점을 고려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A와 C의 공통점은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미필적 고의와 과실의 차이는 매우 미묘해 많은 경우 상·하급심 또는 수사기관과 사법부 사이에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우리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 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쉽게 말해 의도 없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곰 고의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경우 과실범으로 인정돼 다소 낮은 형벌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 의도성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피고인이 사건 당시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유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변호인은 형사재판에서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며 "피고인의 마음이 붉은색이었는지 푸른색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검사는 객관적 증거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그 의도를 증명해야만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필적 고의란 '어떤 행위가 결과적으로 범죄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이 행동을 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엽총으로 새를 쏘려다 사람이 맞는 경우 포수가 '총을 쏘다 자칫 주변사람이 맞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도 총을 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살인죄가 성립한다.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이준석 전 세월호 선장도 미필적 고의 때문에 1·2심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이 선장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인정했지만, 2심에선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의 주장은 이 선장이 '승객들의 사망'이란 결과를 예측하고도 이를 용인하는 행동, 즉 퇴선 명령 없이 배를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승객의 사망을 예측할 수 있었단 점에 대해선 1심 재판부도 이견이 없었다. 이 선장 스스로 배에서 다급하게 빠져나간 점에 비춰보면 가라앉는 배 안의 승객들이 숨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2심 판단이 엇갈린 대목은 이 선장이 '결과를 용인했는지' 여부다. 1심은 이 선장이 승객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하려고 퇴선 명령을 내렸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2심은 퇴선명령을 들었다고 진술한 다른 선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1심을 뒤집었다.

이처럼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필적 고의는 '인식 있는 과실'과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포수가 자신의 솜씨와 경험을 믿고 사람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총을 쐈다면 과실치사죄에 해당한다.

인식 있는 과실은 어떤 결과를 예상했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와 동일하다. 다만 결과를 예측하고도 이를 용인하는 미필적 고의와 달리 인식 있는 과실은 그 결과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구분하는 것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중요한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으면 피고인의 이익대로 해석한다'는 형사소송법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미필적 고의가 의심되더라도 이를 드러낼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고의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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