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82~1991년 씨름선수로 활약했다. 이만기식 호쾌한 씨름에 열광하는 '이만기키즈'가 적잖았다. 뒤집기, 들배지기… 발밑의 흙을 박차고 자기보다 큰 상대를 눕히는 모습이란. 이씨가 최근 한 방송에서 "그때는 씨름이 인기, 지금 김연아보다 인기 많았다"고 했는데 결코 빈말은 아니다.
그날 KBS 공개홀에서 씨름대회가 열렸다. 그를 마주친 것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아마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려 했던 모양이다.
"사인 해달라고 해봐."
아버지가 등을 떠밀었다. 너무 긴장했던 걸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말았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속으로 '우와, 이만기 만났다'고 여러번 되뇌었던 것 같다.
이씨는 겁없는 신예 강호동의 등장 후 은퇴했다. 그 후 24년, 그때의 초등학생 이만기키드는 아이아빠가 됐고 그는 교수·씨름해설자·방송인으로 변신했다. TV 속 그는 때로 왕년의 운동실력을 뽐내고, 때로 장모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인간미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정치도전이다. 그는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불출마선언으로 공석이 된 당 김해을 당협위원장을 맡으면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21일엔 경남 고성군수 선거지원차 고성에 간 김무성 대표와 함께 했다.
이쯤 되면 한나라당에 애증이 겹칠텐데, '증' 보다는 '애'가 컸나보다. 인제대 교수로 김해에 자리잡은 그는 지난해 6.4 지방선거때 새누리당 소속으로 김해시장에 도전했다.
올해 당협위원장을 맡아 내년 총선에 성큼 다가선 것도 우연한 행운이기보다 줄기차게 문을 두드린 결과다. 씨름판에서 거의 질 것같던 경기를 뒤집기 한판으로 이기곤 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지금까지 그가 왜 정치를 하려는지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단지 모래판에서 보여줬던, 지고는 못 배기는 승부욕 때문일까. 잦은 방송출연도 결국 정치도전을 위한 포석이었을까. 그렇다면 수많은 '이만기 키즈'에게 실망만 주는 건 아닌가.
어린 시절 우상의 모습 그대로 남아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집요하게 정치를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김해시장 혹은 국회의원이 된다면 무엇을 목표로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인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해 발전"이야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못받았던 '이만기 사인'을 다시 받을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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