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안팎에서는 지난 8월말까지만 해도 홍 본부장의 연임 전망이 유력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성과평가에 따라 1년 연임할 수 있다. 홍 본부장은 유례없는 저성장·저금리 여건 속에서도 지난해 5%대 수익률로 선방한 데다 투자체계 개편에서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 시작이 5~6개월 차이나지만 최 이사장의 임기가 3년인 만큼 차기 이사장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홍 본부장을 1년 더 연임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전임인 이찬우 본부장도 전광우 전 이사장과 3년 임기를 채웠다. 기금운용본부에서는 최근까지 홍 본부장 주도로 사상 첫 헤지펀드 투자 등 하반기 운용을 준비해 왔다.
국민연금이 홍 본부장 교체 카드를 선택한 데는 성과평가 자체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교체를 결정할 만한 명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 이사장의 판단이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연금이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며 수백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기금운용 책임자의 교체를 단행하면서도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 기금 규모에 걸맞는 인사를 선임하겠다는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그동안 최 이사장과 홍 본부장의 불편한 관계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최 이사장이 투자 집행에 대해 사전보고를 받는 등 기금운용본부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서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몇 달 전에는 임원회의에서 최 이사장이 사전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홍 본부장을 질책한 적도 있다"며 "올 상반기에는 대체투자 사후관리 감독권을 두고 내내 마찰을 빚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이 결정적으로 홍 본부장 교체 결심을 굳힌 시기는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에 대한 이견이 공식화되면서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 "정부·여당의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압박이 거센 가운데 국정감사에서 홍 본부장까지 공사화에 찬성 입장을 보이자 결국 인사로 의지를 보인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그동안 공사화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해왔다.
일각에서는 최 이사장이 임기 7개월여를 남기고 홍 본부장과 동반 퇴진할 각오까지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 이사장이 국감에서 공사화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것을 두고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해임건의안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간 주도권 잡기 신경전이 한창인 가운데 국민연금의 수장이 이 정도까지 의지를 보이면서 여당 입장에서도 야당을 설득해 공사화 논의를 이끌어가기 어려워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빠른 시일 안에 기금이사추천위원회를 구성, 후임 인사를 서두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홍 본부장의 공식 임기가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교체가 결정되면서 인사 지연에 따른 운용 공백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민연금 내부적으로 이미 줄서기와 편가르기 양상이 나타나면서 업무 집중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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