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동양그룹, 700일 눈물의 교훈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15.10.12 03:22

[동양사태 2년] 오너 경영권에만 집착 돌려막기 오판…시대 흐름 발맞춘 변화 거부한 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동양그룹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룹은 무너졌지만 옛 계열사들이 매각과 구조조정을 통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하면서다. 동양시멘트 등 경쟁력을 갖춘 알짜 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는 평가다. 거꾸로 말하면 오너 일가와 경영진의 오판과 실기가 아니었다면 그룹의 몰락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이후 동양그룹이 치른 대가는 컸다. 한때 재계 5위였던 그룹은 와해됐고 현재현 전 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는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옛 계열사들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제 궤도를 되찾는 데 700일이 훌쩍 넘는 시간을 소비했다. 쪼그라든 매출과 날려버린 기회비용은 수조원에 이른다. 이미지 추락에 따른 무형의 손실은 셈하기도 어렵다.

동양그룹이 무너진 근본적인 원인은 무리한 사업 확대였다. 부족한 자금으로 무리하게 지배력을 확대하면서 몰락의 씨앗이 잉태됐다. IMF 외환위기 직후 대우채 사태로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이 5000억원의 고객 손실을 보전하게 됐을 때 결단을 내려야 했지만 현 전 회장은 빚을 내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면서 동양증권을 놓지 못했다.

류승협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차입으로 마련된 출자금이 한해 2000억원이 넘는 이자 부담으로 돌아왔다"며 "순환출자 고리는 이런 부담이 그룹 전체로 옮겨붙는 고속도로가 됐다"고 말했다.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건설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그룹 주력인 시멘트와 레미콘 사업에서 수천억원대 적자가 났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보다는 자산 지키기에 급급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제조업체 GE(제너럴일렉트릭)는 금융위기 이후 진행해온 거대한 변화의 일환으로 최근 글로벌 10대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 탄탄하게 다지고 있다. GE는 이 과정에서 창립 아이템으로 미국의 국민기업이나 다름없던 가전사업부를 해외에 매각한 데 이어 그룹의 캐시카우인 GE캐피탈까지 시장에 내놨다.

국내에서도 삼성그룹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매각한 게 생존과 성장을 위한 모범적인 변신으로 꼽힌다.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은 "기업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며 "동양의 몰락은 시대 흐름에 맞춘 변화를 거부한 데 대한 시장의 응징"이라고 말했다.


동양그룹은 위기가 닥친 뒤에도 구조조정 시점을 놓쳤다. 2012년 말 주력사업 부문인 레미콘과 가전부문 매각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했지만 성사된 것은 레미콘 공장과 선박 냉동창고에 그쳤다. 확보한 자금은 1500억원에 불과했다. 동양매직(협상자 교원그룹·KTB PE) 동양네트웍스 IT서비스사업부문(한국IBM) 동양 파일사업부(보고펀드) 한일합섬(갑을상사) 등은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하고도 욕심을 부리다 매각이 모두 무위로 끝났다.

동양그룹 전직 임원은 "그룹 내에 상당히 많은 자산이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며 "현 회장이 계열사 경영권에 집착하며 한 푼 더 건지려다 그룹이 와해됐다"고 말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당시 헐값 매각 논란이 있었지만 기업이 헐값에 넘겨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도 상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그룹이 막판까지 구조조정 등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던 이유 중 하나는 금융권 차입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고금리 회사채와 CP(기업어음)가 너무 잘 팔려 한동안 무난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룹 곳간이 비어가는 가운데 계열사끼리 부채를 돌려막은 게 화를 키웠다.

동양그룹의 숨은 실세로 지목됐던 김철 전 동양네트웍스 대표는 동양사태 직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수년 동안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넘기는 걸 지켜보면서 매달 부도를 염려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4만6000여명의 회사채·CP 피해자가 2조3000억원을 물렸다. 경영진이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구조조정을 미루다 가해자 겸 피해자가 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 전 회장의 집무실에는 '병교필패'(교만한 병사는 전쟁에서 반드시 패한다)라는 좌우명이 걸려 있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법정관리를 예상치 못했다는 현 전 회장을 보며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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