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운다?…"'블랙박스' 분석이 열쇠"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 2015.10.12 03:27

[김신회의 터닝포인트]<59>실패 두려움이 禍 키워…실패해도 무사할 수 있어야

1978년 12월28일. 유나이티드에어라인 소속 173편 항공기가 미국 포틀랜드 국제공항 인근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89명 가운데 10명이 죽고 20여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미국 교통당국의 조사 결과 사고기는 연료가 바닥이 나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기에는 원래 충분한 연료가 있었지만 조종사는 착륙을 앞두고 문제가 생긴 랜딩기어에 신경 쓰느라 연료가 동나는 줄 몰랐다. 전문가들은 비상착륙에 대한 두려움이 비행기를 추락시켰다고 지적한다.

'실패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조종사처럼 대부분 실패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성공을 하면 찬사와 보상이 따르지만 실패한 사람은 비난과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포장하기 쉽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2011년 4월호)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은 자기 조직에서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실패는 2-5%밖에 안 되지만 실제로는 70-90%가 큰 잘못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실패하면 손가락질을 하며 응분의 조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블랙박스 사고'(Black Box Thinking) 표지./사진=아마존 캡처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매튜 사이드는 최근 발간한 '블랙박스 사고'(Black Box Thinking)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무도 실패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비난과 책임의 무게가 워낙 커 실패 자체를 피한다는 것이다. 사이드는 의사가 실패시 변명을 위해 환자에게 합병증을 거론하는 것이나 사법당국이 명백한 무죄 증거를 무시하는 것, 정치인이 별 효과가 없어 보이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 모두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이 결과 병원에서는 의료사고가 잇따르고 정치는 무능해졌으며 법정에서는 무고한 이들이 희생된다. 미국에서만 미리 막을 수 있는 의료사고로 매년 40만명이 숨진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은 수다. 급성환자 10명 가운데 1명이 의료사고로 숨지거나 병세가 나빠진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미시간대는 미국 법원이 지난 15년간 내린 징역형 판결을 사형선고와 같은 기준으로 재검토하면 2만8500건 이상의 면죄부가 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에 실제로 판결이 뒤집힌 사례는 255건에 불과했다.

사이드는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하려면 실패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실패해도 무사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항공업계에서 '블랙박스'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했다.


비행기에 장착된 블랙박스는 사고시 원인을 밝혀내는 장비다. 항공업계에서는 사소한 사고라도 발생하면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에 든 자료를 분석한다. 사고 원인이 밝혀지면 그 내용이 고스란히 공개되고 문제가 된 절차가 개선돼 향후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한다. 사이드는 지난 수십년간 항공업계가 블랙박스로 실패를 분석한 덕에 항공안전이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사이드는 아무리 큰 조직도 '블랙박스 사고'를 통해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며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 진공청소기업체 다이슨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 설립자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다이슨은 1979년부터 84년까지 5127개의 시제품을 개발한 끝에 대표작인 '듀얼사이클론'을 선보였다. 5년간 5126번 실패한 셈이다.

구글은 작은 결점을 찾기 위해 연간 1만2000차례의 데이터 분석 실험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구글은 툴바의 색조를 미세조정하면 클릭수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실제 조정을 통해 연간 매출을 2억달러 늘릴 수 있었다. 다이슨은 이 책 서평에 "창조적인 돌파구는 언제나 여러 차례의 실패에서 시작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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