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의 잠금해제]2025년 내딸은 로봇과 싸워야한다는데…

머니투데이 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 겸임부장 | 2015.10.10 08:50

<30> 소설도 로봇이 쓰는 시대,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영화 'her'의 메인 포스터 / 출처 : 네이버 영화
유명 여성 작가 표절 논란이 잠잠해질 무렵인 지난 9월 초 이번엔 또 다른 남성 작가가 표절 시비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이 논란은 이미 두어 달 전 잡지를 통해 알려지고 해당 소설가는 “명백한 도용이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사과를 한 ‘철 지난’ 이슈였음이 드러났다. ‘특종’에 목마른 일간지 기자들이 뒤늦게 이런 전후 사정을 알리지 않고, 마치 이 작가가 여론에 등 떠밀려 처음 사과한 것처럼 십자포화를 날렸다는 기자칼럼(뉴스1)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비슷한 때 눈길을 끈 또 다른 외신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 조지아 공대 연구팀이 ‘인터렉티브 소설’을 자체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 ‘셰에라자드-IF’(Scheherazade-IF)를 개발했다는 보도다. 인터렉티브 방식의 소설은 독자가 중간중간 이야기 전개를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어 소설 진행 과정이나 결론을 열어둔다. 이런 일을 사람이, 작가가 아닌 인공지능, 로봇이 할 수 있다니 이제는 창작의 영역조차 로봇에 내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초,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을 계기로 한 뇌과학자와 인터뷰가 떠올랐다. 이 뇌과학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제일 빨리 없어질 직업 군중 하나를 ‘변리사’로 꼽았다.

즉, 특허를 출원할 때 침해요소가 없는지, 방대한 국내외 특허자료를 뒤지면 고만이고, 심지어 특허출원 관련 서류 작성까지 말끔하게 해준다니 그 어렵다는 변리사 자격증 따윈 가장 먼저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그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아니어도 그럴 수 있겠다며 수긍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표절 사건과 셰에라자드-IF 개발 기사를 접하니 ‘과연 로봇이 할 수 없는 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가?’라는 비관으로 바뀌고 만다. 예술과 같은 이른바 창작활동이야말로 인간 마지막의 영역 아니었나!

앞선 두 표절 사건은 경우가 좀 다르다. 여성 작가의 경우 “기억이 나지 않는다”해서 뭇매를 맞았고, 남성 작가는 비교적 빨리 “옛 사건의 정확한 정보가 필요해 검색하다가 명백하게 도용했다”고 인정했다. 여성 작가의 표절은 디지털화돼있지 않은 소설이었고, 남성 작가의 도용은 인터넷 블로그의 글이었다.

상상을 해보자. 만약 국내 소설이나 유명 해외 소설들이 모두 디지털화돼있다면? 여성 작가는 “진짜 알고도 베낀 거 아니냐” 또는 “(소설) 빅데이터도 안 돌려보고 창작을 했단 말이야. '사만다'(영화 'Her'의 인공지능 비서)에게라도 물어보지. 게으른 작가 같으니라고”하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뉴스가 인공지능과 로봇에 관한 이야기이니 이런 상상쯤이야.


그 뇌과학자는 지난 6일에도 여러 대중 앞에서 “10년 내 일자리의 70%가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에 뺏긴다”고 말했다고 여러 언론이 보도했다. 10년 후면 2025년이고, 내 딸은 26살이 된다. 내 딸은 노동 시장에서 윗세대나 또래 남자들과 일자리를 다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로봇과도 경쟁하게 생겼다.

뇌과학자의 전망이 그저 먼 미래 일이 아닌 거 같은 근거 하나는 (아직 국내 기업의 동향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해외 기업은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애플은 최근 2개 인공지능 스타트업 보컬IQ와 퍼셉티코를 인수했다. 구글은 '성격 로봇' 특허출원까지 신청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페이스북 등도 몇 해 전부터 관련 기술 확보나 인공지능 전문 뇌과학자를 속속 영입하고 있다.

정부는 ‘정년연장+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청년 일자리, 즉 신규 고용은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소, 관리, 모험 등등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은 기정사실화돼있다.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게 되면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 마련’은 '눈속임'조차 어려울 것이다. 뇌과학자의 주장처럼 로봇이 할 수 없는 분야를 찾는 아주 궁색한 모습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청년이든 여성이든 중장년층이든 사람 고용과 그 고용에 드는 비용이 생산성에 방해되는 요소로 치부되는 사회라면 늙은이가 양보하고, 정부가 펀드를 만들어 지원해도 일자리가 느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표절에서 적어도 "몰랐다"는 답변이 궁색해질 정도로 디지털 데이터는 어마어마하게 쌓이고 소설쓰기마저 로봇이 대체하는 시대. 인류의 존재 이유와 사람 노동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2015년 스물여섯이 되는 딸의 먹고살 일이 더 큰 걱정인 게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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