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과 모방 중심의 성장 체질에 익숙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일에 소극적인 한국 산업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 산업의 성장과 경쟁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 공대 26명의 석학이 한국 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 책 '축적의 시간'을 펴냈다.
책은 26명의 멘토들에게 6가지 공통 질문을 중심으로 개별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통 질문은 △한국의 산업계가 처한 현실 △한국의 산업계가 돌파해야 할 관문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 △산학협력의 과제 △대학(공대)의 역할 △국가정책의 보완점 등이다.
26명의 멘토들은 반도체·조선·건설·자동차 등 한국 산업을 대표하는 전문가들이다. 각각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지만 산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많은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위기의 원인으로 제기한 키워드는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다.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과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개념설계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축적된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 산업의 성장 모델은 선진국이 제시한 개념설계를 빠르게 모방, 개량하는 방식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장 모델이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한다.
책은 한국 산업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경험을 쌓아가기 위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산업 차원의 축적 노력으로는 선진국과 중국의 축적된 경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산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어 국가적으로 축적해가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축적의 범위를 산업의 경계 바깥으로 넓힘으로써 우리만의 고유한 축적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축적의 시간=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음, 지식노마드 펴냄, 559쪽./2만8000원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