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거절했다고 자료 수백장 요구한 한심한 의원님…누구?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 2015.09.27 08:00

[정진우의 '관심(官心)']관료들이 말하는 요즘 '국정감사'

편집자주 | 관료들의 생각과 얘기를 통해 어려운 정부 정책을 쉽게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정책 기사에 직접 담지 못한 관료들의 고민도 전합니다. '관료들의 마음'(官心)을 통해 관료사회와 더불어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여드립니다.

민족 최대명절 추석입니다. 커다랗게 뜬 보름달이 풍성한 한가위를 알립니다. 모처럼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환하게 웃는 아주 특별한 날이죠. 하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기획재정부 A과장은 웃을 수 없다네요. 마음이 편치 않아서랍니다. 주말을 이용해 고향집에 갔다가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서둘러 다시 세종시로 복귀한다고 합니다. 추석연휴 다음날인 이달 말일까지 국회에 제출해야할 자료들이 산더미라고 하네요. 아무래도 휴일인 내일도 출근해야할 것 같다고 쓴 웃음을 짓습니다. 추석이 끝나고 다음달 초 시작될 국회의 2차 국정감사 탓입니다.

A과장은 타 부처 동기 B과장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국감때마다 등장하는 이상한(?) 의원실 때문에 힘들다고 하네요. A과장은 "작년에 모 부처에서 의원들이 요구한 예산이나 민원을 들어주지 않자, 의원실에서 국감 중에 수백 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요구해 고생했다고 한다"며 "국감 하루 전날 말도 안되는 질의서를 보내거나, 방대한 자료를 요구해 날을 샌 적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경제부처 C과장은 매년 국감철이면 관료의 길을 선택한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합니다. 의원들의 근거없는 의혹과 무리한 추궁으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대응하다보면 다른 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매년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다보면 힘이 빠진다고 하소연합니다. ‘도대체 나는 왜 공무원이 됐을까’란 회의감이 든다고 하네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5.9.15/뉴스1
대한민국 관료들이 국감 피로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국감은 국회가 국정 전반을 조사하는 연례 행사입니다. 정부를 감시하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면서 바로잡는 국회의 고유 업무입니다. 의원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논리로 무장한 송곳 질문을 통해 정부의 잘못을 따져야 하는 자리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진행하는 국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부 의원들의 도가 지나친 행태 때문입니다. 관가에선 국감이 관료들을 앞에 앉혀놓고 망신주는 자리로 통합니다. 의원들끼리 경쟁하듯 큰 목소리로 윽박지르며 혼내는 모습을 TV에 내보내기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정책 국감'은 사라지고, '정치 국감'만 남았다고 하네요.

실제 D부처 사례를 볼까요? 의원들은 이 부처 수장이 졸업한 학교나 몸담았던 조직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특혜를 줬다고 의심합니다. 특별히 내놓는 근거는 없습니다. 단지 같은 학교와 조직 출신이란 이유가 전부입니다. 지인들의 사업권 취득에 이 부처 수장이 관여, 혜택을 준거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국민들이 TV로 국감을 지켜본다는 생각을 해서 그럴까요? 이 의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특정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냐고 넘겨 짚기도 했습니다. 이 수장이 참다못해 국감을 마치고 나중에 살펴보니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하네요.


의원들이 관료들을 꾸짖는 과정에서 공무원 노동조합이 항의하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기재부 국감에서 일부 의원들이 기재부를 재벌 장학생, 재벌의 하수인, 한국경제를 망친 주범 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노조에선 "일부 국회의원들의 인신공격성 막말은 사실상 범죄 행위다"며 "정당한 비판이 아닌 부당한 인신공격을 통해 이득을 얻고, 지역구민에게 이름을 알리려는 저질 정치인들의 얄팍한 술책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시민단체 등 일각에선 이런 국감이 지속될 경우 "정책의 질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의원들이 정책은 뒷전에 두고, 정치적 논란만 키우면 관료들도 자연스럽게 '이번 국감만 어떻게 잘 넘기면 되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겁니다. 엉터리 정책으로 혈세는 더 낭비되고, 국민들도 더 이상 '빈 수레가 요란한' 국감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겁니다.

올해 국감은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입니다. 전반전(1차 국감)은 그렇게 끝났고, 이제 후반전(2차 국감)만 남았습니다. 사회부처의 한 관료는 "내년 봄 총선이 있기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 정책을 평가하기보다 정치적인 논란을 일으켜 자신을 알리려는 수준 낮은 의원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며 "국민들은 그런 의원과 공무원들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2차 국감을 통해 각 지역구 의원들의 자질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국감이 끝나면 의원님들은 내년 총선을 위해 또 '국민의 심부름꾼'이란 복면을 쓰고, 표를 구걸하는 노래를 부를 겁니다. 국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제대로 된 민생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이번 마지막 국감을 통해 따져보면 좋을 것 같네요. 자질이 떨어지는 의원들은 내년 총선(20대 국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거나, 설령 나왔더라도 떨어지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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