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죄"… 추석연휴, 남편들의 하소연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 2015.09.28 16:46

"예민해진 아내 때문에 냉장고 청소, 조기 퇴근"…아내 눈치 보느라 진땀 빼는 남편들

추석을 앞둔 13일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을 찾은 성묘객들이 성묘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꼴도 보기 싫어!"
결혼 1년 차 유부남 A(35, 서울 강남구)씨는 얼마 전 아내에게 이 같은 말을 들었다. 아내는 추석 1주일 전부터 차츰 예민해지더니, 명절이 다가오자 본격적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내가 화를 낸 이유 중 하나는 며칠 전 A씨의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다. A씨의 어머니는 아내에게 전화해 "26일 오전에 올리기로 한 차례를 취소하고 오후에 아들의 외할머니 댁에 함께 가자"고 권유했다. 이 날 오후는 A씨 부부가 아내의 친정에 가기로 계획한 날이다. A씨는 한 동안 아내의 화를 삭이기 위해 퇴근도 일찍 하고 좋아하는 야구 중계 시청도 자제하는 등 최대한 아내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로 인해 부부가 싸우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고민을 호소하는 남성도 늘어나고 있다. "아내가 시댁 일에 시달린 것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결국 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이 너무 괴롭다"는 것이다.

유부남들이 가장 많이 꼽은 명절 싸움의 원인은 여성에게만 노동이 몰리는 명절 문화다. 제사와 손님 접대에 필요한 음식 장만을 여성들이 전담하다보니 남성들은 대부분 모여서 얘기를 나누거나 TV를 보는 게 대다수인데, 이것이 아내에게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 3년 차 B(34, 서울 서초구)씨는 지난 설 때 아내와 함께 본가에 방문했다가 본가에서 키우는 개와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했다. B씨는 "평소 직장 생활을 하던 아내가 익숙치 않은 노동 때문에 많이 피곤해 했다"면서도 "딱히 시비 거리가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유로 다투고 나니 새삼 유부남 선배들로부터 듣던 '명절 전쟁'의 얘기가 실감 났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쟁은 결혼연차가 높지 않은 신혼 부부 간에 상대적으로 자주 일어난다. 반면 오래된 부부들은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올해로 결혼 16년 차인 C(36, 서울 강서구)씨는 "결혼 초기에는 명절마다 '이런 남자인 줄 알았으면 결혼 안 했다'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었다"면서 "지금은 최대한 싸움을 줄일 방법을 연구한 끝에 명절엔 주로 외식을 하거나 조리가 간편한 고기 등을 위주로 식사하기로 문화를 바꿨다"고 말했다.


결혼 10년 차 D(43, 서울 마포구)씨는 아예 처갓댁 가기 전 카페에 들러 아내의 하소연을 들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방법을 택했다. D씨는 "본가가 부산, 처갓댁이 창원인데 매년 창원으로 넘어가기 전 길목에 있는 카페에 앉아 아내와 단 둘이 얘기를 하면서 화를 풀어준다"며 "명절 스트레스는 명절이 없어지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들은 이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역할 모델에 충실했을 뿐인데 왜 아내는 남편 탓만 하느냐는 것이다. 결혼을 2개월여 앞둔 예비신랑 E(34, 서울 영등포구)씨는 "주변 유부남들이 '명절이 되면 아내한테 잔소리 들을 것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복날 기다리는 개'처럼 긴장하며 아내 눈치만 보고 있더라"고 전했다. E씨는 또 "남편이 일을 도와주면 되레 아내가 시댁 식구에게 눈총 받을텐데,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현실에서 남성은 존재 자체로 미안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는 "가부장적인 문화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자식과 부모 세대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부가 명절 때 싸우는 것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일함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만 노동이 전가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지난 20~30년 동안 우리 사회의 명절문화가 조금씩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는 만큼 남성과 여성 모두 양성이 일을 분담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고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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