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쳐톡톡] 축제의 기억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 2015.09.26 08:49
“골방에서 작품만 하고 있지 마라! 전업 작가의 팔리지 않는 작품이 ‘쓰레기’가 아니라, 팔리는 그림만 취급하여 일반 미술대중이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만날 기회조차 박탈하는 이 땅의 예술적 토양이 ‘쓰레기 수준’이었음을 적극 계몽해야 한다.”

이글은 한 여류 원로화가 원고를 일부 발췌하여 그대로 옮긴 글이다. 한 미술 평론가가 ‘팔리지 않는 작품은 쓰레기’라고 폄하한 것과 한국 중산층 집에 몇 십만 원짜리 미술품 하나 걸려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의 글이다.

3만 달러를 바라보면 이 땅에 문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노가 문화 예술 전반에 넘쳐난다. 특히 미술, 시와 소설, 현대무용과 발레 등등에서. 미술로만 좁혀서 보더라도 한 해에 약 2만 명의 대학교 졸업생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 중 90% 이상은 그대로 실업자거나 품팔이 학원 선생이 된다. 미술은 영화, 디자인, 벽화, 설치물, 건축, 웹툰 등 시각 예술의 기초과학에 해당하는 장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미술의 부활로 촉발되었고 그때 조각, 벽화, 미술품 등은 수백 년 이상 사람을 불렀다.

이제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미술의 거리는 어디며, 중산층 집에는 과연 그림 몇 점이 걸려있을까? 해외여행, 명품 백, 고급 차 구매엔 수백만 원씩 펑펑 쓰지만 몇 십만 원 그림 구매엔 꽤나 인색한 한국 중산층이다. 그런 부모들을 둔 도시의 10대들 방에는 아이돌 브로마이드가 벽지처럼 붙어 있다. 이렇게 미술품은 일반 대중에게서 떨어져 있다. 안타깝지만 개인 차원에서 당장 어떻게 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미술의 부활 방법을 축제에서 찾아볼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필 왜 축제냐고? 한국에 축제만 해도 2천 개가 넘기 때문이다. 회당 평균 3억 정도 예산이면 연 6천억 원, 10년을 했으면 누적 6조 원이다. 엄청나다. 그런데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나 장터 축제로 끝난다. 아깝다. 지자체에 사진 몇 점과 홍보물, 동영상 자료 몇 개뿐 남는 게 없다. 일 년에 3-4일 하려고 그 많은 인력과 돈을 썼는지 의문이 간다. 물론 축제가 가지는 순기능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축제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젠 10여 년 이상 축제를 치러봤으니 옥석을 가려 좀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어떻게?


우후죽순 생겨나는 쓰레기 축제는 가능하면 없애거나 통합하고, 비교적 콘텐츠가 있는 좋은 축제라면 예산중에 10%는 테마를 담은 설치 작품과 미술품으로 만들어서 옥상, 가로, 정류장, 회관 등에 보존 및 전시를 하자. 그러면 일석 삼조 효과가 있다.

첫째, 축제의 기억도 남을뿐더러 연중으로 축제의 의미와 기억을 느낄 수 있다. 젊은 층이나 외국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즐겨 찾는 홍대 앞 그라피티 거리나 통영 동피랑 마을, 부산 감천 마을을 보라. 그곳엔 그림과 설치 작품들이 즐비하다. 언론이나 방송 카메라들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그러면 매일이 축제가 된다. 이것을 10년을 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럼 벌써 한국은 새마을 운동의 3.0 버전쯤 되는 축제 갤러리 국가가 됐을 것이다.

둘째, 요즘은 비주얼 시대고 1인 사진작가 시대다. 설치물이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찍어 페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로 공유하고 저장한다. 따라서 연중 홍보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러면 수천 명 이상의 젊은 미술가들이 축제에 참여하여 문화 일자리는 자동적으로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 예술은 땅으로 내려오고 사람들은 예술을 가지고 놀 수 있다. 작품들 중 일부는 지역유지나 단체, 상점에서 사들여 전시하자. 그럼 눈에 닿고 발길에 닿는 곳에 예술이 있게 된다. 집들이 문화가 없어졌으니 마을들이로 대체하는 셈이기도 하다. 이렇게 축제의 기억을 만들어 축제도 살고 미술가도 살리자. 기억이 없는 나라, 미술을 골방에 가둔 나라는 3류 국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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