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대표적인 위험자산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주가가 오르는 게 보통이다. 반대로 채권은 고정이자를 제공하는 안전자산이다. 경기확장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투자자가 손해를 보기 쉽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주식과 채권에 대한 분산 투자로 한 쪽으로 치우치는 데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주식 60%, 채권 40%'를 이상적인 균형 투자 비율로 본다.
하지만 두 자산시장에서 모두 붕괴 신호가 나타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일자 최신호에서 투자자들이 주식이나 채권시장의 급락 가능성에 맞서 헤지(위험회피) 차원에서 어떤 자산을 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증시가 추락할 때는 채권이 헤지 투자처로 제몫을 했다. 글로벌 증시가 고전한 10분기 동안 국채는 평균 4.8%의 수익을 냈다. 현재 글로벌 증시와 채권시장에서 모두 고평가 우려가 나오지만 적어도 두 자산시장이 한꺼번에 추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글로벌 증시가 고전할 때는 상품(원자재) 선물, 특히 금이 국채에 버금가는 헤지 투자처 역할을 했다. 다만 회사채는 국채와 달리 손실을 내 헤지 전략에 큰 도움이 안 됐다.
반대로 국채시장이 거센 투매 압력을 받았을 때 주식의 헤지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채권시장이 고전한 10분기 동안 글로벌 증시가 오른 경우는 6분기에 그쳤다. 그나마 증시는 2009년 저점에서 강력한 랠리를 펼친 덕에 채권시장 침체기에 평균 3.5%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오히려 상품 선물이 채권에 대해서도 든든한 헤지 투자처가 됐다.
시장이 언제 무너질지는 어차피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장기 투자자에게 단기적인 시장 붕괴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많다. 실제로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무너진 시장은 곧 회복됐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87년 미국 뉴욕증시가 폭락한 '블랙먼데이'처럼 시장이 갑자기 붕괴하는 게 아니라 타이어에서 공기가 빠지듯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비슷한 사례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증시는 강력한 경기부양정책에 힘입어 최근 랠리를 펼치고 있지만 1989년 말 고점에 비하면 여전히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 속에 증시가 장기간 하락세를 지속한 결과다.
도쿄 증시 대표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1989년 12월29일 3만8915.87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몇 차례 랠리를 펼치기도 했지만 장기적인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수는 지난 주말(1만8070.21)까지 26년간 고점의 46%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금융시장이 침체를 겪는 동안 일본인들은 해외 자산에라도 투자할 수 있었지만 이젠 장기불황 조짐이 선진국 전체로 확산되고 있고 신흥시장의 투자매력이 부쩍 약해져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