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박스]자연이 작곡한 '여름'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 2015.09.09 03:20
나른한 여름 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드는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가느다란 소리. 손을 저어 쫓아 보지만 이내 가까워지며 귀에 맴돈다. 모기다. 들릴 듯 말 듯 귀를 간지럽히고 달아날 듯 다시 돌아오는 모기의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 있다. 스크랴빈 연습곡 0p.42 No.3다. 이 곡엔 <모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빠르게 흐르는 음표들과 끊길 듯 끊이지 않는 멜로디가 모기의 소리와 너무도 닮아있어 듣고 있노라면 그 놀라운 표현력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또 다른 여름의 오후, 따스한 햇볕이 좋아 마당으로 나간다. 이때, 어디선가 날아드는 말벌 한마리. (나무가 많은 우리 집 마당엔 종종 벌이 출현한다.) 두려움에 머리를 감싼 채 도망 간다. 이때 떠오르는 또 다른 음악 하나. <왕벌의 비행>이다. 백조를 구한 왕자와 공주로 변한 백조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오페라 <<술탄 황제의 이야기>>에 쓰인 이 곡은 제 2막 1장에 나오는 관현악곡으로 백조를 습격하는 호박벌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모기, 벌과 같은 곤충을 비롯해 강아지, 고양이 등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들을 소재로 표현한 곡들이 참 많다. 쇼팽은 강아지가 자신의 꼬리를 잡으려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고 <강아지 월츠>를 작곡했고 생상은 <<동물의 사육제>>를 통해 사자, 닭, 당나귀, 코끼리, 캥거루 등 수 많은 동물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프로코피에프 역시 <<피터와 늑대>>에서 오리, 새, 늑대 등 다양한 동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의 소재를 음악의 소재로 사용한 곡도 있다. 존 케이지의 <워터 워크>라는 곡엔 목욕통, 파이프, 물통 등이 등장한다. 제목이 왜 워터워크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왜냐하면 물을 사용하고 제가 걸어다니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꽃병, 물통, 보온냄비, 컵등이 나열되어 있는 주변을 걸어다니며 물을 따르거나, 꽃병에 물을 주고, 맥주를 마시거나 물건을 떨어뜨리는 등의 여러 행동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들을 모아 하나의 음악으로 만든다. 일상의 소리들이 모여 음악이 된 것이다.

예술로 표현된 일상의 소재들. 한여름 거슬리던 모기, 무섭던 벌, 시끄럽게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 바깥에서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소리까지. 어느덧 하나의 멜로디가 되고 음악이 되어 다가오는 듯 하다. 자연이 작곡한 <여름>이란 제목을 가진 곡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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