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몇 달 전 지방에서 저희 캠페인에 대해 색다른 의견을 주시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성공의 기준을 바꾸자' 캠페인은 교육문제뿐만 아니라 '지방 살리기', '국토 균형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지방의 인재들이 모두들 '서울'을 목표로 대학과 직장을 준비해서 지역 사회의 인재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인구 5000만명 중 절반인 2500만명이 수도권에서 '오글오글' 모여사는 기형적인 나라가 됐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더 깊이 있게 말씀을 듣고 싶어 인터뷰를 청하고 달려갔습니다. 만나본 분들은 대구에서 오랫동안 풀뿌리 시민활동에 매진해 온 이창건 대구YMCA 기획실장(48)과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41)입니다. 이창건 실장은 대구 YMCA에서 20년 넘게 청년 권익 보장에 앞장서 온 청년 정책 전문가입니다. 권상구 이사는 2001년 대구 근대골목투어 개발을 이끈 주역입니다. 권 이사의 노력으로 볼거리가 부족하다고 평가 받던 대구는 다른 도시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할 정도로 관광도시의 일원이 됐습니다.
권상구 이사(이하 권): 지역 인재의 상위 1%는 무조건 서울로 떠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교육을 받아오면서 굳어진 기준이 '서울로 가야 한다'입니다. 졸업하고 나면 눈높이에 맞는 직업이 지역에 없기도 하고요.
이창건 기획실장(이하 이) : 지역의 청년 유출 현상은 세대간의 갈등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대구 지역의 경우, 청년 유출 원인으로 일자리 창출 문제를 꼽습니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 섬유도시, 의료도시, 실버도시 등 다양한 정책을 펴내고 내세웠지만 모두 허탕이었어요. 정책의 중심에 청년이 있지 않고, 기성세대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래세대의 몫이 없는 도시의 모습이야 뻔합니다. 지역 자체의 매력이라도 있다면 좀 나을 텐데, 그것조차 없어요. 대구는 월 200만원의 수입만 있으면 넉넉히 살 수 있는 도시라 평가 받는데, 월 200만원을 줄 수 있는 일자리조차 턱없이 부족하죠.
이 : 청년의 문제는 결국 청년 중심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노년과 청년이 경쟁하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청년들은 취업에 대한 활로를 치열하게 찾고 있는데 기성세대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솔직히 우리 사회에서 청년취업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보죠. 청소년 1000명이 넘는 행사를 벌여도 사람들이 잘 안 오는데, 노인 관련 축제를 열면 국회의원, 시의원 등이 당장 달려옵니다. 청소년에게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죠. 청년 문제는 청년이 나서야 합니다. 선거권을 낮추자는 청소년 유권자 운동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청년들은 입시준비, 취업준비에 바쁠텐데요.
이: 지금 지역 청년들을 모아보면, 너무 파편화 돼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할 생각을 잘 못합니다. 하나의 일에 대해 집념적으로 몰입하는 것에 자신이 없거나 곧잘 포기해 버리죠. 그래서 3포며, 4포며, 포기라는 단어와 맞물리게 됩니다. 주변 조건에 대해 주체적으로 돌파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면 포기해 버리는 거죠. 그나마 시민사회라는 공공영역에서라도 지원을 해야 하는데 이 영역 역시 청년 참여가 저조합니다. 젊은 시민단체인이 한 명도 없어요. 젊은 애들이 왔다가 못 버티고 다 나갑니다. 청년들이 보충되지 않으면, 지역사회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죠.
권 : 지역을 바라보는 개념을 수도권 대 지방이 아니라 로컬(local)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다른 나라의 도쿄, 베이징, 워싱턴 등과 접속할 수 있는 창구이지 결코 어느 한 지역을 지배하거나 흡수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서울이 지역을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IMF 금융위기 사태 이후부터 수도권이 지역을 지배하고 지역 인재들을 빨아먹으면서 비대해지고 있어요.
행복의 지표를 수도권에 맞추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구라는 도시가 어느 정도 단계까지 왔다는 지표를 서울이 아니라 해외 다른 도시와 비교해 맞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구는 일본 도쿄가 아니라 오사카나 교토를 보고 도시의 강점이나 배울 점을 찾아야 하는 거죠.
-수도권 중심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인지요.
권 : 그렇습니다. 현재는 수도권이 상(上), 지역이 하(下)로 높낮이로 구분돼 있는데, 수평적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다양성을 지표로 삼으면 상하 구분이 무의미해지거든요. 사실, 난조건에서 성공하는 것도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대형마트의 성공은 대구에서 시작됐어요. 수도권보다 비교적 열악한 시장성을 가진 대구에서 대형마트가 성공하니 전국화에도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성공하는 모델은 다른 지역에서도 먹힙니다.
권 : 2001년부터 시작한 대구 근대골목투어를 마무리하고, 최근 대구 북성로 지역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북성로의 재발견'이란 프로젝트로 시민들이 직접 근대건축물을 구매해 수리하고 거주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입니다. 이 도시에 잠재돼 있는 자원들을 직접 소유해 나중에 땅값이 높아져도 쫓겨나는 모델은 되지 말자는 것이 주요 목표에요. 이런 방식의 프로젝트는 대구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지역마다 다른 지표가 각 지역을 살릴 수 있습니다. 지역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지역에는 각자 맞는 돌파구가 있을 겁니다.
-청년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가려는 이유는 남들에게 내세우기 좋은 명문대학, 높은 연봉의 직장에 가고싶다는 욕구가 강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를 쓰고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는 이는 드물더군요. 왜 그럴까요? 주거난, 높은 물가, 교육비, 생존경쟁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다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이상한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일 겁니다. 삶의 기준, 성공의 기준을 명문대, 연봉, 명예, 지위 같은 것에 두고 있어서 그런 거죠. 마음만 달리 먹으면 지방이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인데 말이죠.
권 : 자신의 삶에 몰입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살아가면서 대한민국 정부 전체에 대해 고민하고 싶진 않아요. 스트레스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본인의 삶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 역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등바등 거리지 않고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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