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5800원의 '非노동자'…근로장학생의 설움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15.09.04 05:30

근로계약서 못쓰는 근로장학생, 학칙도 근로조건 명시 안해…정부·대학 "근로장학생은 말 그대로 학생"

지난달 27일 고려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하던 A씨가 고려대 안암캠퍼스에 붙인 대자보./ 사진=A씨 제공
#"우리가 그만 두라고 하면 그만 둬야지!"

지난달 27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교내에 붙은 대자보의 제목이다. 대자보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아침 학사지원부 직원들로부터 "더 일을 하고 싶으면 다시 지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처음 일할 때부터 계약기간 등에 대해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A씨가 이유를 묻자 직원들은 근무태도를 문제삼았다. 결국 직원들 입에서 "우리가 그만 두라면 그만 둬야지"라는 말이 나왔고 A씨는 9월 말까지만 일하게 됐다. A씨는 "그동안 수십개가 넘는 강의실 기자재를 관리하면서 충실하게 업무에 임했다"며 "1년반이 넘도록 일했는데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막연한 이유만으로 마땅한 설명과 절차 없이 학생을 자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부족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를 일터로 삼은 근로장학생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특히 근로자와 동일한 형태의 업무를 하면서도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학교 내 규칙마저 근로장학생의 기초적인 근로조건조차 규정하지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넌 학생이고, 난 학교야" 근로장학생을 위한 대학은 없다

3일 대학정보 공시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고려대학교의 근로장학생은 4138명에 달했다. 고려대 문과대학 학사지원부가 내놓은 모집공고를 보면 근로장학생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면서 시간당 5800원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이들은 단과대 기자재 관리와 도서관 안내 등 각종 학교 업무를 도맡는다.

그러나 이들의 모집과 처우에 대한 구체적인 학칙은 전무한 수준이다. 고려대는 '장학금 지급 규정' 제27조에서 "교내 행정업무 보조 등 근로봉사를 제공한 자에게는 학교가 정하는 바에 따라 장학금을 지급한다"고만 명시했을 뿐 고용과 운용을 위한 세부 규정은 명시하고 있지 않다.

다른 대학도 비슷한 사정이다. 서울시립대는 "근로보조금은 근로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에게 근로 대가로 지급하는 장학금을 말한다"는 학칙뿐이다. 성균관대는 '장학금지급규정시행세칙'에서 "근로봉사 학생 배정은 학생처장이 한다", "근로봉사장학생의 근로봉사시간, 장학금액 기타 필요한 사항은 따로 정한다"는 조항 외에 다른 학칙을 두고 있지 않다. 근로장학생에 대한 모집과 처우에 대한 방침은 학교 측이 전부 쥐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A씨는 "근로장학생은 무슨 이유에서든 잘릴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며 "아무리 근로장학생이라도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예상이 돼야 할텐데,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학과 정부는 근로장학생을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대 관계자는 "근로장학생은 말 그대로 장학생"이라고 선을 그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근로장학생은 근로의 대가로 장학금을 받는 것이지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는 아니다"라며 "따라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학교가 학생과 합의한 근무시간과 기간, 모집과 해임 절차 등을 준수해야 할 책임은 있다"고 말했다.

◇시간제 노동 시켜놓고 주는 돈이 장학금? "근로계약서부터 써라"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학교가 근로장학생에게 노동자의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에 소속돼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면서 최저임금에 근거해 정기적으로 급여를 받는 만큼 근로장학생과 학교 사이에 노사관계가 성립한다는 설명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비정규전략국장은 "근로장학금이라는 제도는 학교가 학생에게 시간제 노동을 시키면서 주는 급여에 '장학금'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뿐"이라며 "교직원을 뽑아서 해야 할 일을 근로장학생들에게 자원봉사처럼 시키면서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는 근로장학생에게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써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내용들이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장학금 제도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장학생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혜정 알바노조 사무국장은 "근로장학금이 장학기금에서 지급되다 보니 이 제도가 대학평가 장학금 부문에서 대학 순위를 올리기 위한 '꼼수'로 사용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학교근로장학생의 급여는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반면 국가근로장학생은 시급 8000원 수준의 높은 급여를 받다보니 이들 사이에서도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해진 규칙과 절차가 없다 보니 대학이 내정자를 정해두고 근로장학생을 뽑는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근로장학생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처우를 끌어올려야 근본적인 갈등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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