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 한자 병기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

머니투데이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 2015.09.03 06:26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찬반 논란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학생이 배우는 국어·사회 교과서의 중요 낱말에 대해 한글과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우리말 중에는 한자에서 온 것이 70%나 된다고 한다. 병기하자는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과 뇌과학적 근거를 고려할 때 초등 수준에서는 한자 병기를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 "그 선수는 국내 경기에서 3연패를 한 후 은퇴했다"는 문장을 보자.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때의 '연패'가 連覇(연달아 이김)를 뜻하는지 連敗(연달아 짐)를 뜻하는지 혼란스러운데 한자를 병기하면 해결된다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별로 타당하지 않다.

연패(連覇)나 연패(連敗)란 단어를 보는 순간 뇌는 일단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란 신경망에 '연패·連覇'란 정보를 올려놓고, 이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장기기억이란 사전지식(prior knowledge) 사전에서 하나씩 찾는다. 마침 찾아서 확인이 되면 이해가 가능하고 찾지 못하면 이해에 실패하게 된다. 이는 어떤 사람의 얼굴 모양을 보고 장기기억 속에서 그 사람의 얼굴 정보를 불러올 수 있으면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원리가 같다.

그런데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동이 뇌의 작업기억에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정보의 수는 3~4개 정도로 제한적이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나 심리장애 등을 겪는 아동의 작업기억 용량은 이보다도 작다.

학습자가 '연패'란 우리말 뜻을 알고 있고 문맥에 의해 이것이 '연이어 이긴 것'을 말하는지 '연이어 진 것'을 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한 경우, 뒤에 병기한 한자 連覇는 쓸모가 없어지고 읽기에 방해가 된다. '연패'란 우리말의 뜻도 모르고 連覇와 連敗란 한자어도 모를 경우 뇌는 이해에 실패한다. 이 경우 한자어는 작업기억의 정보처리에 부담만 주어 읽기에 방해가 된다.


학습자가 '연패'란 우리말의 뜻은 알고 있으나 '연이어 이긴 것'을 말하는지 '연이어 진 것'을 말하는지를 잘 모르고 한자어 連覇를 정확히 알고 있을 경우('이을 연', '으뜸 패'처럼 각 한자의 소리와 뜻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의미)는 한자의 병기는 도움이 된다. 다만 이 때는 한자어를 학교서 '한글보다 이전에' 가르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경우 한글도 잘 모르는 많은 아동들에게 한자 교육은 영어와 함께 이중 부담이 된다. 또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 때문에 이는 사교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론적으로 한자의 병기가 한글의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해당 한자를 우리말보다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초등학생들에게 매우 큰 학습 부담이다. 초등 저학년 아동 중 우리말 해독도 제대로 안 되는 아이들이 5~10%나 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라는 외국어도 도입된다. 소득격차에 따른 '영어 격차' 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한자 격차'까지 발생하면 교육양극화 문제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상시적으로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초등학교 수준에서 한자를 병기하고 이를 학교서 지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기를 하려면 우리말에 대한 노출이 충분히 되어 '연패'란 우리말이 '연이어 이긴 것'과 '연이어 진 것'이란 두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안 이후인 중학교 수준에서 한자병기와 한자 교육을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대하는 효과를 얻는 것을 낙관하기 어렵다. 21세기 뉴미디어 세대의 뇌는 한자어의 모양과 뜻을 연결시키며 익히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그림처럼 익히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여러 가지의 이유로 초등 교과서의 중요 낱말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려는 교육부의 방안은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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