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떠난 여행, '50년 인생' 길이 있었네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 2015.09.01 05:57

[the300]중년男, 나홀로 중남미 여행에서 인생 성찰

'50년 여행 50일 인생' 책표지/저자 제공
한국서 대기업 임원까지 했던 이 남자, 쿠바 변두리 뒷골목에서 일부러 쓰레기통을 쳐다봤다. 먹을 것 찾는 걸인처럼 보이려 순발력을 발휘했다. 누군가 다가온다는 느낌 때문이다. 다행히 쿠바건달(?)로 보이는 청년들은 더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여권과 돈이 든 가방을 한 번은 지구 반대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햄버거집에, 또 한 번은 에콰도르에서 운 좋게 얻어탄 한국인 기업가의 차 뒷좌석에 놓고내린 적도 있다.

'50년 여행 50일 인생'은 50대 남성이 쿠바, 에콰도르, 페루,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을 차례로 돌아본 여행기. 동시에 그가 인생을 반추한 성찰록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다녀온 길이지만, 남다르게 요리했다. 글꾼(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여행지 곳곳마다 첫인상, 방문지의 간략한 역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스케치, 쏠쏠한 여행정보와 시사상식까지 맛있게 버무렸다.


여권 분실, 다이빙 사고 위기 등 아찔했던 기억을 묘사한 대목에선 당시 주인공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행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라면 더욱 실감난다.

고난만 있던 건 아니다. 마추픽추를 눈앞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 적도점에서 북쪽남쪽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기면 마술처럼 물 회전방향이 바뀐다는 에콰도르 경험담도 흥미롭다.


제목은 '50년 인생'과 '50일 여행'의 낱말 짝을 바꾼 것이다. 지은이가 훌쩍 남미로 떠난 건 인생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서다. 그는 50년 인생의 희로애락을 50일 여행에서 돌이켜본다. 위기와 감동의 순간을 반복하면서 마음을 짓누르던 고뇌를 털어낸다.

경험에서 길어올린 문장들도 음미할 만하다.


"인생길에는 왕복표가 없다. 한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편도 티켓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행운만 오는 법도 없다."

1인칭인듯 1인칭 아닌 화법은 신선하다. 모든 문장은 '나는' 대신 '만식은'으로 시작한다. 지은이 홍윤오(현 국회홍보기획관)의 지인이 그를 김성한의 소설 '방황'의 주인공 홍만식에 빗댄 적이 있다. 홍 기획관도 그 인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만식'을 호로 삼았다고 한다.

지은이에게 여행은 새로운 계기가 됐다. 길의 끝에 새 길이 이어진 것처럼, 여행을 마친 뒤 개방직인 국회홍보기획관에 뽑혔다. 100세시대에 '겨우' 50년을 지났다면 아직 50년 인생이 남았다.

책은 어지간해선 나홀로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이땅의 중년에게 대리만족과 사색의 기회를 준다. 실제 여행자에겐 가이드북이자 지역 입문서다. 중남미여행 전 막간(?)을 이용해 떠난 이탈리아·몰타 여행기도 실려 있다.


여행 내내 끊임없이 번민했던 내면을 굳이 숨기고자 하지 않는 그는 개인적 '악연'도 수시로 털어놓는다. 글이 단순한 여행기에 머물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홍윤오 지음. 나눔사 펴냄. 351쪽/1만5000원.

베스트 클릭

  1. 1 "번개탄 검색"…'선우은숙과 이혼' 유영재, 정신병원 긴급 입원
  2. 2 유영재 정신병원 입원에 선우은숙 '황당'…"법적 절차 그대로 진행"
  3. 3 법원장을 변호사로…조형기, 사체유기에도 '집행유예 감형' 비결
  4. 4 '개저씨' 취급 방시혁 덕에... 민희진 최소 700억 돈방석
  5. 5 "통장 사진 보내라 해서 보냈는데" 첫출근 전에 잘린 직원…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