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안받고 ‘이게 뭔가’ 싶었죠. 읽어볼 줄만 알았지, 써보지 않은 이에게 로맨스 소설이라니…. 그렇게 몇번 고민하다 한국 문학 전성기 때 읽었던 소설이 연애소설이라는 기억을 떠올리고 21세기에 맞는 연애 이야기 한번 해봐도 괜찮다 싶어 냈습니다.”
1987년 등단해 올해 30년 가까이 순수 문학의 길을 걸어온 하창수 작가는 ‘봄을 잃다’라는 첫 로맨스 소설을 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 작가뿐 아니라, 본격 문학 작가 4명이 가세해 고품격 로맨스 소설이 한꺼번에 탄생했다. 이른바 ‘고품격 로망 콜렉션’이 그것이다.
하창수, 한차현, 박정윤, 김서진, 전아리 등 5명의 본격 문학작가들에게 건네진 출판사의 주문은 기존의 방식이나 룰을 따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느낌의 로맨스 소설을 통해 독자가 새로운 문학적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었다.
지난 25일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로맨스 소설의 고전인 ‘할리퀸’ 시리즈는 한번도 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장르의 문법이나 공식을 따르지 않아서인지, 마치 우연의 일치처럼 또 다른 축의 장르가 완성된 듯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되, 그 관계가 독특하고 내용 전개도 미스터리 구조 사슬을 따라가는 덕에 호기심을 극대화한다.
40대 이혼남과 20대 초반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봄을 잃다’(하창수)는 동거 중 갑자기 사라진 여인을 통해 ‘연애하는 자아’라는 실존의 의미를 찾는다. 하 작가는 “돌이켜보니 중학생 때 읽었던 한국문학전집 50권 중 45권이 연애소설이었다”며 “연애소설의 변천과정 속에서 제대로 된 연애소설을 쓸 수 있는 문학적 외연이 넓어졌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고 했다.
한차현 작가가 쓴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는 35세 남성의 마음을 빼앗은 ‘N’의 연애를 다뤘는데, N의 정체를 따라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한 작가는 “나만 ‘문학상’ 수상 이력이 없어 오히려 부담감없이 자유롭게 썼다”며 “지난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기억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취향 자체가 공포와 범죄에 쏠려있는 내가 과연 로맨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왕 쓰는 김에 정형화된 틀에 맞게 쓰려고 노력했다”며 “로맨스 소설의 본질은 ‘심쿵’(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는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마법같은 로맨스를 다뤘다”고 말했다.
섬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룬 ‘미인도’의 전아리 작가는 이 소설에 1년6개월의 시간을 할애하며 공을 들였다. 징글징글하면서도 차지고 구수한 문체를 이입하기위해 옛날 국어사전을 뒤적여 500개 가량 단어를 뽑아 사용했다. 전 작가는 “영롱하고 전통적인 미를 살리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본격 문학작가들이 생경하게 다가간 로맨스 소설의 집필 후기가 궁금했다. 하 작가는 “당신이 발견하는 무엇이 사랑이 아니라, 당신을 발견하는 무엇이 사랑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가 그린 사랑이 발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작가가 “나는 왜 러브스토리를 잘 못쓸까를 내심 생각해봤는데, 연애를 많이 해봐서 그런 것 같다”고 하자, 한 작가가 “상상력으로 연애 스토리를 더 잘 쓴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며 “상상도 모두 개인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반론을 펼쳤다. 연애 소설은 탈고됐는데, 연애담은 이들의 머리와 입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로망 콜렉션 1~5=하창수, 한차현, 박정윤, 김서진, 전아리 지음. 나무옆의자 펴냄. 각권 190~250쪽/각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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