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술, 모두 사람 살리는 일… 퇴임후 평양서 의료봉사 꿈"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 2015.08.03 03:30
"제 인생이 15년쯤 남았다고 하면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뒤엔 13년이다. 마지막 3년은 집사람과 함께 보낼 생각이니 10년이 남는다. 그 10년간 무엇을 할지가 요즘 고민이다." 5선 국회의원이자 입법부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 국회의원으로 올라야 할 산은 다 오른 셈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내리막길이 아니라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고 있었다. 예산안과 부수법안의 연내 일괄통과, 국회법 개정안 처리,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국회운영 개선 등 굵직한 현안처리로 의장임기의 절반을 보낸 정 의장을 국회에서 만났다.
◇퇴임 후 10년…'북한 봉생병원' 꿈꾸는 '닥터 정'

외과의사 출신 정 의장은 퇴임 후 북한에서 의료지원을 펼치는 '한국의 슈바이처'를 꿈꾼다. 정치나 의술이나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는 매한가지인 만큼 앞으로 그의 길이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정 의장은 "퇴임 후에는 장인 고향인 평양과 장모 고향인 의주에 30병상 정도의 병원을 짓고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의장 희망대로면 '북한 봉생병원'이 생길 수 있다. '생명을 받든다'는 뜻의 봉생병원은 그가 의사이자 CEO(최고경영자)로 일생을 몸담은 종합병원이다. 부산 동구와 동래구에 있다.

그의 장인인 고 김원묵 박사가 부산에서 개업한 봉생신경외과가 지금 봉생병원의 모태다. 김 박사의 조부, 즉 정 의장의 처증조부가 1910년대 평양에 봉생의원을 연 게 시초다. 김원묵 박사는 전쟁통에 단신으로 월남했다.

우선 첫 단계로 의료봉사활동을 준비하려 한다. 정 의장은 "통일부 장관을 통해 북한에 제안도 넣어놨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북한에서 미국시민권을 가진 한국인은 수술을 하게끔 받아주던데 북한당국에서 대한민국 의사들도 의료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미국시민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 의장의 바람은 진지하고도 오래된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봉생병원 메르스 진료거부 논란을 언급할 때는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묻어났다. 정 의장은 "병원에서 치료가 안된다는 식으로 마치 기피하는 듯한 문구를 사용해 오해를 샀다"며 "그래서 아들에게 오해가 생기지 않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라고 했다. 아들이 TV에 나와 잘못했다고 사나이답게 사과해 잘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봉생병원은 현재 정 의장의 3남이 기획이사를 맡았다.

정 의장은 초등학생이던 아들 셋을 한꺼번에 하루아침에 전학시킨 적이 있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우연히 아들 셋 모두 사립초등학교에 가게 됐다. 나중에 어른이 돼 사회생활을 할 때 세상살이를 알아야 할 텐데 사립학교는 아무래도 좋은 환경에서 다니는 곳이라 어렵고 힘들게 사는 친구들에게도 배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공립초등학교로 아들 셋을 다 옮겼다. 학교장이 '우리가 뭐 잘못했냐'고 물어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추경 여야 합의 안됐으면 밤 10시쯤 단독 처리했을 것"

정 의장을 만난 지난달 23일, 그의 표정은 홀가분했다. 오전에 들려온 여야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합의 소식 덕이다. 이날 여야는 우여곡절 끝에 추가경정예산안을 합의 통과시켰다.

정 의장은 "추경 합의가 안되면 밤늦게라도 기다려보고 정 안되면 단독 처리라도 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만큼 제때 추경이 통과되는 게 중요하다. 국민의 삶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 여당 단독으로 처리했다면 내가 취임한 뒤 첫 단독 처리가 될 뻔했다"고 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야당에는 '단독 처리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여당에는 '내 사전에 단독 처리는 없다'고 했다. 내가 원래 그런 것 잘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견해차를 드러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로 답답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로 자신을 찾아온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30분 넘게 대화했다.

"이번 추경예산안만 해도 국회 예산정책처가 있으니 기획재정부가 마음대로 못하는 것 아니냐"며 입법부와 행정부간 건전한 경쟁과 긴장관계를 강조했다.


◇국회미래연 설치, 임기 중 숙원

정 의장이 힘을 실어 추진해온 수많은 현안 중 국회미래연구원 설치법이 있다. 국민 대표기구인 국회가 단기과제에 갇히기보다 국가 중장기과제를 초당파적으로 연구하자는 취지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의기투합했다. 그는 "국회입법조사처는 단기대응과제 위주고 (정부의)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중장기과제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못한다"며 "정부에 중장기과제를 연구하는 곳이 없는 데다 국회도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야 의원 상당수도 이같은 취지에 공감한다. 미래연구원 설치법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여야의 잦은 지도부 교체의 영향도 있다. 2년 의장임기의 반환점을 돈 정 의장은 연내 법안 통과로 미래연구원 설치에 속도를 내고자 했다.

◇'영수증 국회의장?'…"피땀 흘린 돈은 함부로 못쓴다"

정 의장은 '돈'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다.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가와 지나치게 작은 부분까지 직접 따진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영수증 국회의장'이란 별명도 있다.

그러나 그는 "피땀 흘려 번 돈은 함부로 못쓴다"고 잘라말했다. 국회의원과 정당에 국민 세금으로 세비·보조금을 지급한다. 그 씀씀이를 정확히 하는 건 국회의원이자 입법부 수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남들이 나를 보고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고 쩨쩨하다고 그랬다. 예컨대 돈을 낼 때 영수증을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돈을 내면서 영수증을 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돈은 10원짜리 1개까지 정확해야 한다. 어머니께 배우기로도 그렇다. 1만원을 주면서 '뭐 좀 사오라'고 했을 때 얼마가 남았다고 잔돈까지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 정치권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돈을 대충 쓰는 것 아닌가 싶다."

◇부산에서 사진전, 재출마 여부엔 "…"

정 의장은 정치입문 전부터 사진 사랑이 유별났다. 의대 졸업을 앞두고 대학생 신분으로 사진 개인전을 열었다. 정 의장은 "당시에는 갤러리도 마땅한 곳이 없어 다방을 빌렸다"며 "대학생으로서 사진전을 연 것은 그때까진 내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오는 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부산 해운아트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 사진전 '정의화의 시선'을 연다. 이후 다음달 7~11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한다.

'사진찍는 국회의원'으로도 꽤 알려진 그는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후에는 카메라를 들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아쉽다. 그는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사진을 많이 못 찍어 얼마 전 해외순방을 나갔을 때 찍어보려 했는데 경호원들이 카메라 앵글에 자꾸 들어와 제대로 못 찍었다"며 웃었다.

사진전을 여는 게 내년 20대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정 의장은 43년간 촬영한 사진기록을 정리하는 의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사진전에서 생긴 수익도 전액 기부할 생각이다.

아직까지 국회의장을 마치고 출마한 전례는 없다. 정 의장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정치력을 키운 국회의장도 전례가 없긴 마찬가지다. 정리=김성휘·정영일 기자 sunnykim@

△1948년 경남 창원 △부산고·부산대 의대 △15·16·17·18·19대 국회의원 △봉생병원 원장 △한나라당 원내총무 권한대행 △17대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국회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특별위원장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 △한나라당 세종시특별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및 국회의장 직무대행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위원장·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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