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형제의난', 왜 아버지 뜻에 집착하나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 2015.08.01 16:43

'말한마디 해임' 제왕적 통치의 폐해…아버지 뜻이 곧 천명

롯데그룹의 경영권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동생에게 왕국을 뺏긴 형의 쿠데타 시도로 비치던 상황이 어느새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동생의 반란으로 바뀌었다. 형은 육성 파일, 지시서, 언론 인터뷰 등 전방위 공세를 펼치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동생을 단죄해야 한다고 하고 있고, 일본에 머물고 있는 동생은 묵묵부답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벌이는 정당성 싸움=이번 경영권 갈등에서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양측이 모두 절대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뜻이다.

신 전 부회장은 이번 갈등의 발단이 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 해임이 자신 아닌 아버지의 뜻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아버지(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가 동생(신동빈 회장)의 해임을 지시했는데 이 같은 지시가 지켜지지 않아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

"아버지가 동생 해임 지시가 지켜지지 않자 불같이 화를 냈다. 아버지는 동생을 해임하고 대신 나를 롯데홀딩스 사장에 임명했다"(한국 방송 인터뷰)

신 전 부회장이 이처럼 '아버지의 뜻'을 강조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후계자 정통성'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신 전 부회장으로서는 이번 갈등을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 신 총괄회장을 비롯한 가족의 뜻을 거스른 것으로 몰고 가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신동주 대 신동빈'의 양자 대결 구도가 아닌 '신동빈 대 아버지+나머지 가족' 구도여야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주요 경영진으로부터 한일 통합경영을 사실상 승인받은 동생을 밀어내고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뜻'만한 카드가 있을 수 없다.

◇'일인천하' 제왕적 지배구조가 만들어낸 촌극=신 회장은 이미 한국뿐 아니라 일본 핵심 경영진으로부터도 롯데의 '원리더'로 인정 받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달 15일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은 신 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로 선임했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신 총괄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해임하고 명예회장으로 추대하는 안건도 통과시켰다. 두번의 이사회 결의에서는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의 이사진이 모두 찬성표를 던진 사실상의 만장일치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신 회장 역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극도로 꺼리고 있다. 신 회장은 형의 공세에 대해 경영권과 무관한 일부 친족들이 고령으로 심신이 불편한 신 총괄회장에게 위력(威力)을 행사해 부당한 인사 명령을 내리게 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를 위해 불가피한 행동에 나선 것뿐이지 반기를 든 것은 아니라는 것.


이는 신 총괄회장 개인이 여전히 강력하게 한일 롯데그룹의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90대 고령인 신 총괄회장의 한마디가 전체 경영진의 결정보다 앞서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형에 비해 한참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신 회장의 경영능력이나 갈수록 초라해져가는 일본 롯데에 대한 현지 임직원의 걱정은 신 총괄회장 개인의 결정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한국 롯데그룹은 연 매출 83조원, 종업원 수 10만명(이상 2013년 기준)의 재계 서열 5위 기업이다. 하지만 의사 결정 구조는 이 같은 위상을 무색케 한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27일 일본 롯데홀딩스 본사를 갑작스레 찾아 신 회장을 비롯해 이사진 6명의 해임을 구두로 지시했다. 이에 앞서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롯데호텔 34층에서 신 전 부회장 등 일부 친족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일 롯데 핵심 임원의 해임을 명령하는 지시서를 작성했다.

등기임원이나 이사회 멤버 해임시 당연한 절차인 이사회 소집은 물론 정상적인 인사명령체계도 없었다. 구두 해임이 아닌 지시서 작성이 오히려 이례적인 일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 지분구조가 드러나지 않는 비상장 지주사 등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는 이중 삼중의 장막이 쳐 있다. 외부에서는 절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혼탁한 지배구조 속에서 제왕적 총수가 전권을 휘두르는 게 이번 경영권 갈등에서 드러난 롯데그룹의 현 주소다.

신 회장이 본격적으로 한국 롯데 경영에 뛰어든 것은 2004년 정책본부장이 되면서부터다. 신 회장은 지난 10년간 식품과 유통업에 쏠려 있던 롯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중화학, 금융으로 확대했고 이에 자산 규모는 20조원에서 80조원으로 4배 커졌다. 재계 서열은 7위에서 5위로 뛰었다.

롯데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경영권 갈등 이전 신 총괄회장이 왜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는지,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며 "신 총괄회장은 형보다 뛰어난 동생의 경영능력을 높이 샀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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