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한글로 된 '서약서'에 서명한 외국인…효력 없어"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 2015.07.31 12:00

한글 못읽는 캐나다인, 설명 못듣은 채 서명

패러글라이딩.

우리말을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 '사고가 벌어져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글로 작성된 서약서에 서명했더라도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오선희)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중 부상을 입은 캐나다인 A씨가 강사 B씨와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A씨에게 총 8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2년 가까이 B씨가 운영하는 패러글라이딩 파크에서 지도를 받으며 연습조종사 자격을 딴 A씨는 2013년 6월 착륙하던 중 다른 글라이더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B씨의 지도를 받아 착륙하던 중 같은 지점에 착륙하던 글라이더의 줄에 발이 걸려 균형을 잃은 것이다.

이 사고로 A씨는 척추뼈를 다쳐 3개월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이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렸다.

A씨가 소송을 내자 B씨와 보험사는 자신들에게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벌어지기 전 A씨가 '면책서약서'를 작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A씨는 '패러글라이딩 교육·비행 중 벌어지는 어떤 신체나 재산상의 상해 및 손실에 대해 전적으로 본인이 책임진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서약서는 A씨 과실로 벌어지는 모든 문제에 대해 패러글라이딩 파크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서약서에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A씨가 서약서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내용을 설명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A씨는 이름을 적는 칸에 서명을,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칸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고 지적하며 "캐나다인인 A씨가 한글로 적힌 문서를 읽은 뒤 제대로 이해하고 서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서약서 내용도 자신의 과실로 발생한 부분을 책임진다는 취지일 뿐 B씨 측 과실이 있어도 모두 면책한다는 뜻으로 보기 어렵다"며 "만약 B씨 측에 귀책사유가 있는데도 책임지지 않는 내용이라 해석한다면 이는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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