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 사람인데…" 달콤한 '사칭범죄'의 맛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15.07.31 04:52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출입문으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뉴스1
#경기도 시흥시의 한 교회에서 이모씨(46)는 '변호사님'으로 통했다. 떼인 돈부터 이혼까지 법률자문을 해주고 재판 관련 서류를 척척 써냈다. 이씨는 자신이 '법무법인 마중물'의 대표 변호사라고 했다. 2012년 결혼한 아내와 처제는 변호사 남편, 형부를 자랑스러워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씨의 말은 곧 '법'이었다. "재판에서 이기게 해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수백만원이 통장으로 입금됐다. 이씨는 민사 재판 중이던 김모씨(63·여) 등 피해자 3명으로부터 4억5000여만원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정말 고맙다", "꼭 부탁한다"며 이씨만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나 이씨가 지난 8일 체포됐다. 검찰은 이씨가 변호사 신분증을 위조하고 돈을 뜯어냈다고 했다. 3년간의 '변호사 행세'가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최근 변호사, 경제전문가부터 청와대 특수요원까지 고위·특수직 행세를 하는 '사칭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위·특수직의 '탈'을 쓰고 보다 쉽게 돈을 뜯어내려는 목적도 있지만, 내면에는 명예를 향한 갈증과 허영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내가 변호사다", "청와대 갔다왔다"…고개 드는 고위직 사칭 사기
3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이씨처럼 신분을 위조하거나 직업을 속이는 등의 ' 가짜·속임' 사기 범죄는 2011년 9955건에서 2012년 2만2153건, 2013년 2만4379건으로 급증했다.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를 사칭한 이씨는 사기전과 5범의 상이군인이었다. 수입은 상이군인연금 90만원이 전부였다. 이씨에게 간접적으로 맛본 변호사의 권력은 달콤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는 "이씨의 법률 경력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보조로 3개월 간 일한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여자친구와 2년 가량 교제하면서 4000여만원을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로 구속돼 최근 검찰에 넘겨진 임모씨(42)도 비슷한 사례다. 임씨는 자칭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출신의 경제전문가였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에 다니고 있으며 청와대 요직에 파견을 다녀왔다는 그럴듯한 경력도 덧붙였다. 모두 거짓이었다. 일정한 직업도 없는 상태였다.


지난 27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 송치된 최모씨(72)는 청와대 비밀요원을 사칭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쓰일 금괴를 세탁해야 하니 자금을 빌려달라"고 접근해 전모씨(47)로부터 5000만원을 뜯어냈다. 최씨는 있지도 않은 금괴와 엔화 사진을 여러 명에게 전송하고 '총재님', '회장님' 소리를 듣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인들은 비밀요원이라는 말만 믿고 '잘 봐달라'며 고개를 숙였다"고 전했다.

'가짜·속임' 사기 범죄 발생 대비 '허영심·사치' 사기 범죄 발생 추이./ 그래프=유정수 디자이너
◇'사칭 범죄'는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나도 대접받고 싶다"
고위직·특수직 사칭은 기본적으로 돈을 쉽게 뜯으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칭 범죄의 배경에는 명예와 신분상승에 향한 욕망이 감춰져 있다고 분석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칭 범죄자들은 권력자, 부자, 지식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돈을 뜯으려는 목적 외에 '나도 대접받고 싶다'는 심리와 계급 상승 욕구가 섞여 있다"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대검찰청 통계에서 '허영, 사치심'이 사기 범죄의 동기로 작용한 경우는 2011년 253건, 2012년 230건, 2013년 280건 등으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적 권력·위세에 취약한 피해자들의 심리 역시 사칭 범죄가 범람하는 또 다른 이유로 지목된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이스 피싱 등의 범죄를 보면 '검찰 수사관' 등을 사칭할 경우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며 "고위직 직함만 대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문화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허영심에서 시작된 사칭 범죄는 참담한 최후를 맞기 마련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람을 속여 재산을 뜯어내는 사기죄는 최대 징역 10년형 또는 2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씨처럼 변호사를 사칭해 법률자문을 하거나 사건에 관여할 경우 변호사법을 적용받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사칭 범죄는 우리 사회의 근간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신분을 속여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는 엄벌에 처해짐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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