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룰 메이커는 케익을 가지지 않는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부장 | 2015.07.31 03:25

편집자주 |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아래 조정위)가 논의 6개월 만에 내놓은 조정권고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권고안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법인(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이 주체가 돼 해결책을 실행하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만 놓고 보면 당초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협의를 진행할 당시의 초기 목적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에 있어서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6개월간 3차례만 만나 논의를 한 '과정의 허술함'은 차치하더라도 보상의 범위나 보상금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보상안이 없다는 점과, 유족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 등등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질병의 인과관계를 감안하지 않는 문제 등 조정안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 중에서도 가장 큰 논란거리는 사단법인의 구성과 모호성이다.

제도라는 것은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원칙과 그것이 규정하고 있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해진 규칙을 수긍하고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정안은 이 같은 조건들을 무시하고 있다.

왜 재원을 항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단법인이 아닌 재원의 소멸성을 갖는 사단법인으로 출발하는지부터 시작해 사단법인의 핵심 구성원인 '사원'을 누구로 할 것인지는 조정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

사단(社團)법인이란 일정한 목적을 위해 결합한 사람의 단체이고, 재단(財團)법인이란 일정한 목적에 바쳐진 재산이 그 실체를 이루고 있는 법인이다.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내놓고 '직원들의 건강 문제를 다루는 공익 목적의 법인'이라는 목적성을 가진 곳에 누가 '사원'으로 참여할 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철학자 벤담은 '조정(coordination)'을 이해관계의 인위적인 동일화라고 했다. 이해관계자가 상대방이 되더라도 인정할 수 있도록 조정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조정안은 어느 일방의 주장을 담은 측면이 강하다. 가족대책위도 이번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조정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사단법인이 일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공익법인의 발기인 7인이 소위 '진보진영'으로만 구성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은 있다.

세상의 목소리는 다양하고 그 다양한 목소리를 함께 담는 그릇이 공익재단인데 그 구성원의 편향성에 대한 이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련된 재원 1000억원 중 300억원은 재단의 운영비 등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는 그동안 노동운동을 해 온 '현장의 운동가'들의 순수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요소다.

어떤 규칙을 만들거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그 제도 마련에 기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그 제도나 규칙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제도 마련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익법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상한 선거구 획정을 한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게리멘더링(엘브리지 게리+전설의 괴물 샐러맨더의 합성어)을 닮아간다. 노동운동 단체들이 사무국과 옴부즈맨에 대거 포진할 경우에 대한 우려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이 이번 공익법인 설립에서 한발 물러나야 한다.

요즘은 '진보가 보수보다 더 보수적이다'라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자신의 철학과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외곬 때문이다.

자금이 고갈되면 반도체협회에서 또 갹출해서 자금을 지원받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사단법인으로써 노동단체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구조가 된다면 환자나 유족들을 볼모로 삼아 정치를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케익을 나눌 때 룰 메이커는 케익을 가져가지 않는다. 8년간의 결과가 공익법인으로 나타나면 이제는 '운동권'이 아닌 제도권으로 넘겨야 한다. 옴부즈맨을 만들어 기업 활동을 감시하는 일은 노동 및 환경을 관리하는 정부에 맡길 일이다. 룰을 만든 사람이 그 케익을 갖지 않는 게 순수성을 의심받지 않는 길이다.

베스트 클릭

  1. 1 '선우은숙 이혼' 유영재, 노사연 허리 감싸더니…'나쁜 손' 재조명
  2. 2 '외동딸 또래' 금나나와 결혼한 30살 연상 재벌은?
  3. 3 '눈물의 여왕' 김지원 첫 팬미팅, 400명 규모?…"주제 파악 좀"
  4. 4 '돌싱'이라던 남편의 거짓말…출산 앞두고 '상간 소송'당한 여성
  5. 5 수원서 실종된 10대 여성, 서울서 20대 남성과 숨진 채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