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아빠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검사한다고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왕따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서요."
28일 만난 정지헌(48) 서울보건환경연구원 보건연구사는 메르스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20여년 한 직장에서 일해 온 '베테랑'이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는 발병부터 확산, 종식을 거치는 기간 내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자신과 가족, 환자들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임무였지만, 동시에 자신은 물론 주변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서울보건환경연구원은 매일 서울 각 지역의 메르스 의심환자 검체를 체취, 양성·음성 판정을 내리는 작업을 맡았다. 환자는 물론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과 사용했던 물건까지 바이러스 검사의 대상이 된다. 최고참급인 정 연구사도 이번 사태 기간 동안 확진 환자가 발생한 대형병원 4곳을 비롯해 서울 지하철과 병원 등 수백여 곳을 검사했다.
"서울 강남 소재 한 병원의 확진환자 병실의 검사를 실시할 때는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 물 분자도 통과하지 못하는 레벨C 보호 장구를 착용했지만 의도치 않은 돌발 상황 등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환자 바로 옆에서 검사해야 할 때는 '혹시나 환자가 재채기라도 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보호복을 입고 있어도 무서운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더군요"
특히 환자 뿐만 아니라 보호장구를 갖춘 의료진도 다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어려움은 더 커졌다. 몇달 동안 말 그대로 '메르스 바닥'에서 구르는 스스로는 어떻게 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주변에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하는 '전파자'가 될 것이 더 두려웠다는 게 정 연구사의 소회다. 사태 초기인 6월엔 각 병원도 제대로 메르스 대응을 하지 못해 상황이 열악했다.
"웬만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고, 피치 못하게 집에 들어갈 일이 생겨도 '내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몇 번이고 얘기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본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었어요."
더욱이 의료진과 환자들의 어두운 표정과 절망감은 작업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소였다고 털어놓았다. 정 연구사는 사태 초기 한 병원에 들어갔을 당시의 장면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사태 초기였는데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을 걸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떨렸습니다. 그런데 분위기는 왜 이리 삭막한지. 확산을 막기 위해 응급실 집기마다 하얀 천을 덮어뒀는데, 너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병원 내의 사람들도 별다른 대화나 표정이 없었고요. 사태가 마무리되고 다시 개원할 때 찾아가봤는데, 어찌나 활발하던지. 다른 곳 같았습니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 '종식'을 선언했지만, 정 연구사의 생각은 다르다. 감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인식도 무방비상태였다는 게 이번 사태를 거치며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염병은 특별한 대책이 준비되기보다는 병의 증상을 환자들이 일상적으로 공유하고, 일선 보건소가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바탕으로 환자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게중요합니다. 국민들을 최대한 불안하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도 있는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선 정부의 대응이 가장 안타까웠고요. 메르스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닙니다. 현재 검사를 계속 진행 중이고, 앞으로 토착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