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를 단순 전시장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창업자나 기존 사업자들이 후지필름 기술을 이용해 새 사업의 힌트를 얻거나 후지필름과 사업 파트너 관계를 맺기도 하는 비즈니스 무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후지필름 창조경제'의 산실이다.
지난 23일 오후 12시, 기자가 방문했을 때 미국에서 왔다는 기업 관계자들이 막 문을 나서고 있었다. 다카히로 다구치 전략본부 홍보담당 매니저는 "하루 딱 3명 또는 3개 팀만 예약을 받아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 출입을 허용한다"며 "1개월치 방문 예약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후지필름이 벌이고 있는 화장품, 필름, 의약품 사업의 각종 소재를 비롯해 사업 아이템 50여개가 전시돼 있었다. 이 전시물들은 후지필름의 과거와 미래상을 엿볼 수 있는 열쇠다.
구형 테이프을 개량한 저장장치가 대표적 예다. 겐지 고지마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 관장은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10cm, 두께 3cm 쯤 돼 보이는 사각형 테이프 상자를 차세대 친환경 저장수단이라고 소개했다.
테이프에 의한 저장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회귀라니. 친환경은 또 무슨 말인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지마 관장에 따르면 이 테이프 저장용량은 2.5TB(테라바이트, 1TB=1024기가바이트(GB)), 즉 2048GB에 이른다. 전기사용량은 하드디스크의 10분 1 수준. 작은 양의 전기로도 같은 크기의 하드디스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지마 관장은 "지난해 1월 개관한 이후 400개 기업 또는 창업자들이 이곳을 찾았다"며 "이 중 10%가 실제 창업을 하거나 후지필름과 협력사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는 "후지필름이 소재에 강한 기업이다보니 기술 응용 분야가 광범위하고 아이디어를 접수하면 이를 구체화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기획하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몸통이 돼 움직이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고스란히 옮겨온 듯했다.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우리 기업들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원대상'정도로 보지만 후지필름은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으로 여기고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다는 점이다.
고지마 관장은 "하루 3개 팀(또는 인원)으로 방문을 제한한 건 이곳이 비밀스런 장소여서가 아니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라며 "이름을 공개할 순 없지만 한국의 다수 기업들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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