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재미'…페스티벌은 그렇게 생명력을 얻는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5.07.29 03:22

[현장클릭] '폭우의 현장' 안산M밸리 록페스티벌…'폭우·진흙탕 공연'도 즐겨야 진짜 록이다

우리나라 페스티벌의 역사는 비와 함께였다. 국내 최초 록페스티벌로 기억되는 1999년 인천 트라이포트페스티벌, 2004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2006년 펜타포트페스티벌 모두 비라는 악재와 맞서 싸워야했다. 트라이포트땐 너무 센 폭우로 무대를 접어야했고, 자라섬재즈 역시 이 일대가 모두 진흙탕으로 도배돼 공연이 중단됐다.

당시 누구도 이 페스티벌이 다음 회로 이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는 비에 취약한 무른 땅에 대한 회의감이 높았다. 비가 안 오면 다른 문제가 뒤따랐다. 공연 장소까지 찾아가는 교통의 번거로움은 물론이고, 화장실 하나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부대시설 등에 실망하기 일쑤기 때문.

한번은 록페스티벌에서 어느 외국인이 화장실에서 세면대위에 용무를 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이 사실을 지인과 몇몇 평론가들에게 전했더니, “글래스턴베리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페스티벌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며 웃어넘겼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페스티벌, 특히 록페스티벌은 고난의 행군이며 불편함의 연속이다. 그 불편함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페스티벌을 찾는 것이다.

2006년 펜타포트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을 때, 부지 수만 평이 물에 잠겼다. 주최측은 임시방편으로 나무 깔판을 이었고, 관객들은 행여 옷이나 젖을까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묘수를 발휘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록페스티벌을 ‘어떻게’ 즐겨야하는지 관객은 잘 몰랐던 것이다.

비가 계속 쏟아지자, 무대 주변에 진흙을 ‘갖고 노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맨발로 자유롭게 다니기도 하고, 심지어 삼삼오오 온몸에 진흙을 묻히며 머드팩까지 하고 있었다. 다른 관객들은 그 광경을 보고서야 알아챘다. 불편한 페스티벌이 어떤 재미를 낳는지.

그때부터 고난의 페스티벌을 되레 즐기는 젊은 층을 두고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좋은 차를 끌고 잘 정비된 텐트촌에서 풍족한 먹을거리와 자연의 풍광을 즐기는 요즘 ‘캠핑족’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 세대들은 2~3km를 행군하듯 걷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진흙과 싸우며 불편함을 즐기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온몸으로 받는 열혈팬이다.


페스티벌이 매년 계속되고 있지만, 폭우를 안주삼아 즐기던 2006년 세대와 안락함을 기대하는 2015년 세대는 다른 것일까.

지난 24~26일 안산 대부바다향기테마파크 일대에서 열린 안산M밸리 록페스티벌은 많은 불편함을 낳았다. 주차공간 부족 문제, 진흙탕 공연 등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민원과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조금만 뒤집어보면, 국내에서 수만 명을 모을 공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고, 그 땅을 키우는 데만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주차공간 역시 차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외국의 다른 페스티벌에 비하면 광활하기 이를 데 없다.

안산 페스티벌은 이제 횟수로 2회째다. 무대 콘텐츠에 대한 노하우는 훌륭하지만, 하드웨어적인 구비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불편함을 즐기고 페스티벌의 진가를 맛보는 것이다.

영국 최대 음악축제인 글래스턴베리는 비가 오면 텐트가 떠내려가는 ‘슈퍼 진흙탕’의 온상이다. 그럼에도 45년간 명맥을 유지해온 것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객의 욕구를 채워주고 불편함을 딛고 만끽하는 해방의 자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다. 해마다 줄고 있는 페스티벌 환경에서 안산M밸리 록페스티벌이 계속 ‘실행’돼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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