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마비? 틀린 기사의 번식력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 2015.07.09 05:55

[우리가보는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사진=네이버 기사검색 화면
"○○경찰서에 따르면 (줄임)… 파상풍, 소화마비 등 예방접종을…."

수개월 전 나온 기사의 일부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위와 같은 기사가 우수수 쏟아진다. 어딘가 어색하다. '소화마비'는 물론 소아마비를 잘못 쓴 말이다. 어떻게 된 상황일까?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복기하긴 어렵지만, 보도자료가 나왔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경찰서 출입기자의 분석이다.

당시 A언론사는 위 기사를 오전에 올렸다. 그리고 이후 다른 언론사들의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수십 개 이어졌다. 복제된(?) 기사에는 틀린 단어 '소화마비'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A사는 몇 시간 후 틀린 낱말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기사는 많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집단적인 실수는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아마 남의 기사를 'Ctrl+V(복사)'해서 가져가면서, 충분히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 달에는 미국 명문대 두 곳에 동시 합격했다는 한인 여학생의 기사가 화제가 된 적 있다. 현지 한인신문이 첫 보도한 이후 많은 국내 언론도 기사화했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큰 화제가 된 탓인지 언론사들의 '검증 부족'에 대한 사과문이 이어졌다.

최근엔 왕년에 유명했던 한 배우가 사망하면서 인기 검색어에 이름이 오른 적이 있다. 관련 기사는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졌다. 한 신문사는 사망 기사에 동명이인인 보다 젊은 배우 사진을 넣었다. 그런데 다른 신문사는 이것을 따라 기사를 썼다.(나중에 수정했다.)


"친구의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소문이 돌 때는 이런 식이다. 호기심 가는 내용이라 말하긴 하지만, 내용에 확신은 없으니 책임감을 덜겠다는 표현이다. 이렇게 루머가 퍼진다. 다른 기사를 근거로 그냥 내용을 옮기는 건 이런 것이다. 사실 확인이 없으니 위험하다. 게다가 인용 표시조차 없이 가져가는 건 문학계에서 뜨거운 '표절 논란'을 갖다 댈 수 있다.

종이신문은 공간에 제약이 있다. 기자들이 기사를 써도 다 실을 수 없다. 자연히 좋은 기사를 써야 일단 빛이라도 볼 수 있다.

온라인은 다르다. 공간에 제약이 없다. 몇KB(킬로바이트) 용량이면 된다. 유통망이 넓으면 물건이 팔릴 확률이 높듯이 일단 기사를 많이 올리고 나면 좀 더 읽힐 가능성이 있다. 인기 검색어에 오른 것을 기사로 찍어 만들면 읽힐 가능성이 더 높다. '잘'보다 '빨리' '많이' 쓰는 것에 초점이 있으니 품질은 나중 문제다. 급하면 일단 글을 복사해 붙인다. 당황스러운 오자가 있어도, 댓글 지적이 붙어도 쉽게 생산된 기사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소화마비'는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는 언론사들의 현재 상태일지 모른다. 물론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그나마 '헉, 충격, 결국…' 류의 질소과자 같은 제목이 근래 줄어든 것이 하나의 위안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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