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차용금사기(借用金詐欺) 유감천만(遺憾千萬)

법무법인 중원 권재칠 변호사 | 2015.07.06 05:49
권재칠 변호사

사람을 기망(欺罔)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것이 사기다. 여기서 '기망'은 남을 속이는 것을 뜻한다. 사전적으로는 기만(欺瞞)과 같은 뜻이다. 이렇게 사기죄에 해당하면 형법에서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사기죄로 인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그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형법과 특경법의 형을 비교해보면 이런 추론도 가능하다. 특경법에서 사기로 인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되고, 5억원 미만이면 형법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중 3년 미만의 징역에 해당돼야 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러나 실무는 그렇지 않다. 특경법이 아닌 형법에 따라 선고하는 경우에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한다.

형법이든 특경법이든 모두 사기가 되려면 남을 속이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남을 속이는 행위를 너무 쉽게 인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유감이 있다. 이는 아마도 돈을 빌리고 갚지 않으면 엄하게 처벌했던 전통으로 인한 구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차용금 사기라는 것이 있다. 내가 집을 사려고 하는데 돈이 부족하니 빌려달라고 해 돈을 빌린 다음 집을 사는데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사용한 뒤 돈을 갚지 않으면 사기죄가 성립된다. 그 이유는 집을 사는데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쓴다고 했다면 전주(錢主)가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인데, 집을 산다고 거짓말을 해 전주를 속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금액의 다과는 있지만 어느 정도 되는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은 재력이 없는 사람이다. 이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재산을 담보로 하거나 신용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다. 실상은 그렇게 돈을 빌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으니 개인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사이에 돈을 빌리고 빌려줬다가 갚지 않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 사이에 금전거래로 인한 분쟁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사기죄의 외연이 무한 확대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최근에 이와 궤를 같이하는 판결이 있어 신선함을 주고 있다.

남편이 여행사를 운영하다가 자금난을 겪게 되자 그 부인이 이웃 주민에게 '남편 회사가 부도위기에 있는데 돈을 빌려주면 내일 들어올 돈이 있으니 바로 갚겠다'고 말하고 7000만원을 빌렸다. 물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돈을 갚지 못했고, 이웃 주민은 부인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돈을 빌릴 당시 운영하던 사업의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회사가 부도 위기에 있다고 말하는 등 재정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돈을 가로채기 위해 빌렸다고 보기 어렵다.

참으로 사필귀정이다. 돈을 빌려줄 당시 이웃 주민은 위와 같이 어려운 사정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 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부인이 이웃 주민인 피해자를 속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차용금 사기로 보이는 대부분의 경우가 사실은 돈을 빌리는 사람이 속인다기 보다는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도 상대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있고 돈을 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빌려준다고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속인다는 말인지. 혹시 법조인 스스로, 어려운 형편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 상대방을 속였을 것이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차용금 사기는 사기 아닌 금전대차로 정리돼야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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