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8일 이병기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거부권 정국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당청 및 여야관계 급랭과 국회 마비에 따른 국정차질을 감수하고라도 이 기회에 여권의 정계개편을 확실히 이룬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 원내대표가 이날 청와대와의 접촉 여부에 대해 "나름 해봤는데 워낙 꽉 막혀 있어서…"라고 말했듯이 청와대는 유 원내대표와의 채널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청와대는 유 원내대표가 증세, 복지 등 주요 정책을 놓고 엇박자를 낼 때마다 내부적으로 불만을 토로해왔다.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회법 개정안 연계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청와대가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을 두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는 것인데 박 대통령은 이미 이때 '더이상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유 원내대표가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으로 현 정부의 성공을 돕기보다 자기정치를 하려 한다는 인식이다. 청와대에서는 이 일로 조윤선 정무수석이 사퇴했고 나아가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당에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며 부글부글 끓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게 사과 한 마디 한다고 해결될 문제냐"고 되물으며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신뢰는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초강경발언의 배경으로 '구태정치' '배신의 정치'를 강조했다.
청와대는 표면적으론 정치개혁에 대한 원론적 얘기라고 설명했지만 이대로 가면 국정동력을 상실해 성과 없이 잔여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게 작용했다. 여권 내 권력지형 변화를 통해 차기 총선 등에 대비해 당 장악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는 거다. 유 원내대표를 지목했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여당 의원들에 대한 경고로도 해석될 수 있다. 19대 초선의원의 상당수는 사실상 박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 공천권을 행사하고 유세지원에도 나섰다. 그런데 집권기간에 당내 권력의 눈치를 보며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들 역시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신의를 저버린 정치인'에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투표로 심판해달라고 얘기했다.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친 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은 29일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진사퇴를 압박하고 거부하면 의원총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집단당무거부, 나아가 집단사퇴까지 감행할 태세다. 그러면 김무성 현 대표체제의 붕괴가 불가피하다. 여당으로서는 최악의 사태전개인데 이 경우 유 원내대표가 사실상 '식물 원내대표'가 될 수밖에 없어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권을 생각하는 김 대표로선 원치 않는 시나리오여서 봉합에 적극 나서지만 결국 김 대표 역시 택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미다.
문제는 청와대의 예상대로 사태가 전개될지 여부다. 친박계의 세가 크게 위축되는 등 당내 권력구도가 예전 같지 않은 탓이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어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문제 등에 대해 추가 언급을 내놓을지 관심을 모은다. 29일이 청와대와 국회에서 유승민 대표를 겨냥, 화력이 총집중되는 디데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익태 기자 ep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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