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정치'와 대통령의 '응징'…그 끝은?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15.06.30 05:44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1905년 7월 미국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를 묵인하는 '구두 합의'를 했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이 용인하는 대가였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훗날 미국 27대 대통령이 된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 미 육군장관이 가쓰라 타로(桂太郞) 일본 수상과 담판을 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을사조약과 경술국치 등 우리에게 뼈 아픈 일제강점의 역사가 이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몸무게가 175kg에 달해 미국 역사상 가장 무거웠던 대통령으로도 유명한 태프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전 대통령의 '후계자 지명' 덕에 대통령이 됐다.

루즈벨트의 오른팔이었던 태프트는 루즈벨트의 대통령 재임 중 그에게 절대 충성하며 신임을 쌓았다. 이 덕분에 루즈벨트의 추천을 받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고, 1908년 대선에서도 루즈벨트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당선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태프트는 루즈벨트로부터 등을 돌린다. 루즈벨트가 내각에 있던 자신의 측근을 통해 태프트에게 부패한 장관의 경질을 요청하자 태프트는 오히려 루즈벨트의 그 측근을 해고한다. 결정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유지하는 '페인-앨드리치 관세법'(Payne-Aldrich Tariff Act)을 지지하면서 태프트는 루즈벨트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태프트의 '배신'에 격분한 루즈벨트는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공화당을 나와 '진보당'(Progressive Party)을 만든다. 이어 태프트의 재선을 막고 스스로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 1912년 대선에 직접 출마한다. 그러나 기존 공화당의 표가 갈리면서 결국 태프트와 루즈벨트는 둘 다 낙선하고 만다. 승리는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던 민주당 후보 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도 '배신'에 적잖이 마음이 상한 모양이다.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는 (중략)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콕 찍어 누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했다. 청와대의 뜻에 반해 야당과 국회법 개정에 합의한 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쌓여온 '불신'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다는 분석이 더 현실적이다.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까지 지낸 '원조 친박' 유 원내대표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항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9년 친이계(친 이명박계)가 제안한 '김무성 추대 카드'를 박 대통령이 거부한 직후의 일이다. 박 대통령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최경환 정책위의장 후보를 도울 것을 친박(친 박근혜계)에 지시했다. 그러나 당시 유 원내대표는 "같은 친박인데 김무성은 안 되고 최경환은 되는 기준이 뭐냐"며 반발했다. 결국 황우여-최경환 조는 경선에서 패했다.

'배신'에 대한 박 대통령의 혐오는 뿌리깊은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1979년 10월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고 청와대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뒤 박 대통령이 입은 '배신'의 상처는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었을 것이다.

신군부의 '박정희 지우기'가 한창이던 당시 한 호텔에서 마주친 옛 아버지의 측근은 박 대통령을 아예 보고도 못 본 체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이렇게 적었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배신'의 설움을 속으로만 삭이던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 '배신'에 대해 '응징'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응징'의 시작이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압박이다. 이 문제를 놓고 여당내 친박계와 비박계 간 내홍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루즈벨트가 '배신자' 태프트를 '응징'하겠다고 나선 결과, 어부지리(漁夫之利)는 민주당이 누렸다.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응징'의 결과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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