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시내면세점 허가에 독과점 잣대를 들이대면

머니투데이 손윤경 이코노미스트 | 2015.06.24 05:50

[마켓윈도]명품 브랜드 소싱 협상력 떨어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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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공정거래법 규정에 따라 롯데와 호텔신라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라 면세점 신규특허 신청 접수는 잘못됐다"

지난 15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정거래법상 독과점을 이유로 특정 대기업의 시내면세점 신규 허가를 불허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시내면세점 독과점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면세점 신청 업체들의 독과점 여부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관할 부처인 관세청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같은 뉴스가 알려진 22일 주식시장에선, 이런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로운 신세계의 주가가 16.4% 급등했다. 신세계는 이번 대기업 시내면세점 신규 신청자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면세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주요 고객인 면세점 산업을 국내 시장의 점유율을 기준으로 독과점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는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면세점 업체들은 대형화되는데 국내 시장만을 기준으로 공정경쟁이라는 잣대를 들어 인위적으로 여러 사업자들이 경쟁하게 하는 구도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한국 면세점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면세점 업체의 대형화가 심화되는 이유는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글로벌 브랜드 제품의 소싱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명품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인 해외 여행이 증가할수록 면세점들이 확보하고자 하는 명품의 종류 및 수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명품의 소싱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것이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제품의 판매수량을 유통 채널별로 직접 통제한다. 면세점과 아울렛 등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할 때 생길 수 있는 백화점 및 로드샵의 수요 위축 및 가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면세점과 아울렛 채널로 공급하는 물량과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가 판매 상대방에 따라 제품의 수량 및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 업체와의 거래가 없었던 신규 면세사업자가 명품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이랜드가 송도 면세점 사업을 포기한 이유가 바로 명품 브랜드 업체들과의 거래가 없어 명품 소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랜드가 충분한 자금을 보유한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명품 소싱에 실패한 것은 명품 브랜드 소싱이 자금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명품 브랜드들은 기존에 거래를 하고 있던 유통업체(면세점)들과도 거래 실적과 향후 가능성을 평가해 제품의 종류와 수량을 결정한다. 이때 유통업체가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은 ‘구매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판매할 채널을 충분히 확보하고 대량으로 구매한다면 제품 확보 경쟁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 업체 입장에서도 소수의 유통업체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는 글로벌 면세점 업계의 대형화도 명품 브랜드 업체와의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3년까지 글로벌 2위 사업자였던 스위스의 듀프리는 2014년 같은 스위스 면세점 사업자였던 뉘앙스와 베네통 계열의 월드듀티프리를 인수하며 1위 업체로 올라섰다. 업계 1위가 된 듀프리는 통합구매를 통해 M&A 이전 2위와 6위, 7위 사업자였던 각 사가 확보했던 명품의 종류와 수량을 단순히 합했을 때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소싱 측면에서는 1위 업체의 협상력은 점유율의 단순합계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참고로 2013년까지 글로벌 면세점 1위 사업자였던 DFS는 1997년에 LVMH(루이비통)그룹에 인수된 이후 모회사의 절대적인 명품 라인업을 기초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누려왔다.


아시아권에도 신규 대형 면세점 사업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14년 중국이 하이난에 세계 최대의 시내면세점을 오픈하였고 일본 역시 기존 외국인에 대한 세금환급 정책에서 더 나아가 2016년 대형 면세점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 이 모두가 중국인의 면세점 수요를 잡기 위한 정책들이다. 결국, 아시아권만을 놓고 보더라도 중국인이 좋아하는 명품을 확보하는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가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추가로 허가하는 것 역시 일본과 중국의 대형 면세점 오픈으로 중국인 관광객 수요가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통해 한국 면세점 사업자의 대형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중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의 일환으로 면세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쟁 글로벌 면세점 업체들보다 명품 브랜드 소싱에서 우위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7조 9,000억원 규모의 한국 면세점 시장(지정면세점 4,000억원 제외)은 시내면세점이 5조 4,000억 원, 출국장면세점이 2조 5,000억 원이다. 시내면세점 5조 4,000억 원 중, 제주도 시내면세점의 규모가 1조 5,000억 원 수준인 것임을 감안하면 서울 시내면세점의 시장 규모는 4조 원에 불과하다.

4조 원 규모의 시장에 4개의 대형사업자가 난립하면 ‘대 명품브랜드 협상력’이 저하될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4개의 사업자가 각각 1조 원 규모의 구매를 경쟁하는 구도보다는 극단적으로 4조 원 규모의 구매를 1개 사업자가 하는 것이 명품 브랜드 업체들과의 제품 소싱 협상에서 얻을 것이 훨씬 더 많다.

따라서 글로벌 면세점 업체와의 경쟁을 통해 중국인을 유치할 쇼핑 컨텐츠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는 많은 플레이어를 선정하는 것이 결코 좋은 의사결정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시내면세점과 출국장면세점을 함께 운영하면서 ‘대 명품 브랜드 협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측면에서는 더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주요 고객으로 하고 중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시점에 국내 면세점 시장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독과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파이를 키우기 보다는 파이를 나눠 먹는데 그치게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손윤경 이코노미스트/캐리커처=김현정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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