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당한 오빠 보고 시작한 공부, 잠 줄여도 좋아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 | 2015.06.19 05:21

[젊어지자 대한민국! 미래 희망 키우는 새싹]<2>10대 화이트해커 "우리는 미래 사이버 보안 사령관"

편집자주 | 청소년을 미래의 희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입시전쟁, 스펙 전쟁에 내몰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성공의 기준을 좇기에 급급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본지는 창사 16주년 및 오프라인신문 창간 14주년을 맞아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는 청소년 3개 그룹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찾아보려 한다.

[목차]
<1>청년창업? '낭랑18세'에 창업 준비하는 무서운 아이들
<2>10대 화이트해커 "우리는 미래의 사이버 보안 사령관"
<3>글로벌? 우리는 우주로 달린다…美우주대회 1등 韓고교생들

공부하기 싫다는 학생에게 어른들이 자주하는 말 한마디. '학교 공부는 교과서라도 있지.' 대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은 억울할 말이지만 공감하는 10대도 있다.

교과서도 없는 공부를 하려니 너무 어렵다면서 투덜거리는 고등학생 다섯 명을 만났다. 미래의 화이트해커를 꿈꾸며 해킹 기술 등 정보보호 공부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서울, 경기 화성, 경북 안동 등 각지에서 공통 관심사 덕분에 한 자리에 모였다.

각종 세계 대회 출전은 물론 주니어 정보보호 세미나 발표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지만 마음 속 한편에 불안함은 있다.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 그럼에도 해킹 기술 이야기가 나오면 신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도 해킹 공부가 재밌을까 싶어 물었다. 무엇이 그렇게 재밌냐고.

"재미를 느끼는 데 딱히 이유가 있나요?" 돌아온 답에 질문이 부끄러워졌다. 미래에는 화이트해커를 꿈꾸는 후배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포부가 당찬 고등학생 5인방의 수다를 들어봤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 강남 모 스터디카페에서 화이트해커를 꿈꾸는 고등학생 5명이 모였다. (왼쪽부터)지용빈(한세사이버보안고 3), 문지현(성희여고 3), 변준우(선린인터넷고 2), 서민교(능동고 2), 임재혁 (서울청량고 3) /사진제공=김창현기자
[참석자]
문지현(17·경북 안동 성희여고 3)
변준우(17·서울 선린인터넷고 2)
서민교(16·경기 화성 능동고 2)
임재혁 (18·서울 청량고 3)
지용빈(18·서울 한세사이버보안고 3)

◇해킹 관심 갖게 된 계기…"가족이 해킹 피해 당하면서"

다섯 명은 어린 시절 놀이처럼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즐기다 보니 프로그래밍 등 기술이 궁금해 진 것. 해킹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은 대략 중학교 이후였다.

(지) 어렸을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주로 컴퓨터를 하면서 놀았어. 초등학교 1학년 때 컴퓨터가 고장난 적 있는데, 컴퓨터회사에서 원격조정으로 수리를 해줬거든? 그때 원격조정되는 화면을 보면서 '뻑갔다'고 해야하나. 그때부터 컴퓨터를 직접 다 뜯어보고 엄청 관심을 갖게 됐지. 친구 집 컴퓨터를 뜯어보다가 친구 엄마한테 혼난적도 있어.(웃음)

(
변) 나는 초등학교 방과후교실로 로봇을 접했는데, 그 프로그램 작동 원리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됐어. 그러다가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안전한지가 궁금해졌어. 우리 학교(선린 인터넷고)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정보보호 쪽 공부를 시작했지.

주변 사람들이 해킹 피해를 당한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된 경우도 많았다. 피해자를 돕고 싶다는 의도에서 해킹 공부를 시작한 덕분인지, 그들은 '블랙해커'가 아닌 '화이트해커'를 꿈꾼다.

(문) 중학교 2학년부터 프로그래밍을 혼자 공부해왔는데. 2년 전쯤인가. 친오빠가 게임 계정을 다 털렸었어. 영화 속에만 있는 것 같던 해커가 실제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지. 우울해하는 오빠를 보면서 내가 도와줄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됐고, 그 계기로 해킹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거야.

(임) 나도 비슷해. 아빠가 인터넷뱅킹 해킹을 당하고 정말 힘들어하셨던 적이 있거든. 그때 해킹에 관심을 갖게 됐어. 어떻게 하면 아빠를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서)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입하게 된 인터넷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를 어떤 해킹그룹이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걸 봤어. 뭐하는 사람들인가 궁금해서 찾다보니 해킹툴(도구)을 만나게 됐지. 그때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 후로 꾸준히 공부하다가 특성화고에 가려고 부모님께 말했는데. "공고가 이름 바꾼 거 아니냐"면서 반대하셔서 결국 인문계로 왔지. 다행히 지금은 열심히 하라고 지원해주셔.


(문) 우리 부모님과 똑같네. 나도 그랬어. 특성화고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어. 인문계 고등학교를 왔지만 교외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상도 받고 하다 보니 이제는 부모님도 조금씩 변하시는 것 같아.

◇"우리도 대학이 걱정, 국내 보안 기업 취업문도 좁고"
'화이트해커를 꿈꾸는 10대'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았지만 이들의 관심사는 여느 고등학생과 같았다. 대학은 갈 수 있을까. 어디를 가야할까. 취업을 하는 게 좋을까. 졸업 이후에 대한 고민과 막막함을 풀어놓았다.

(지) 우리 학교(한세사이버고)는 3학년 때 창업을 하도록 지원하거든. 그래서 요즘 친구들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SW(소프트웨어) 교육 기업을 만들고 있어. SW교육을 강화한다는 기사를 봤거든. 여름 방학 때쯤 정식으로 문을 열거야. 학교 기업 형식이라서 계속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변) 졸업하고 나면 그 기업은 어떻게 해?

(지) 학교기업이라서 학교가 대표인 셈이야. 나는 아이디어 낸 직원 정도? 후배들이 계속 이어갈 것 같아. 졸업 후에 나도 중간중간 들려서 돕고 싶어. 일단 나는 취업을 할까 해서 국내 보안 기업 지원도 해봤는데 쉽지가 않아. 문이 좁더라고. 대학을 가고 싶기도 한데. 특성화고라서 3학년 때 수능시험 과목은 거의 공부를 안하거든. 수능 점수가 필요한 정시 전형은 힘들고 수시 전형으로 가면 좋을텐데. 많이 안 뽑잖아.


(임) 나도 대학 가고 싶다. 인문계니까, 학교 공부하면서 해킹 공부도 하려다보니 정말 잠을 세시간도 못자는 때가 많아. 그래도 정시보다는 수시 전형을 노려야 할 것 같은데. 걱정이야.

(서) 준우랑 나는 아직 2학년이니까. 특성화대학교가 늘어난다고 해서 조금 기대하고 있어. 그때 되면 수시로 갈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지 않을까.

(변) 정말 수시전형 늘었으면 좋겠다. 나는 솔직히 학과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라서(웃음) 해킹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이쪽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전공 실력으로 대학을 갈 수 있으면.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 들어 SW, 정보보호 등 특성화대학 수를 늘리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수능시험을 보지 않고 응시할 수 있는 수시전형 입학자 정원수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도 학생들에게 대학 문은 좁다.

(문) 나도 대학 가려고 준비하고 있지만, 만약에 정보보호 관심 많은 중학생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온다고 하면 나는 말리고 싶어. 대학 입시 중심으로 수업을 받는데 하교 시간이 밤 10시야. 정작 컴퓨터, 해킹 공부할 시간은 부족한거지. 잠을 줄이면서 공부하는데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도 있어. 같은 공부를 하는 친구를 찾기도 어렵고.

(임) 나도 특성화고를 가라고 추천하고 싶긴 한데, 인문계 와서 전혀 길이 없는 건 아니라고 봐. 본인이 적극적으로만 나간다면. 나는 암호학 동아리를 학교에 만들었어. 내가 가르치는 방식으로 시작했지만 친구들 7명이 같이 재밌게 활동하고 있어.


◇"B0B 프로그램에서 우리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

대학 걱정에도 해킹 공부에 대한 열정은 진행형이다. 최근 관심사를 물어보니 하나같이 새롭게 배우고 있는 분야를 설명하느라 바쁘다.

(서)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 커널 관련 공부 중이야. 중국 컨퍼런스 보면 최근 중국 해커들 그쪽 분야를 많이 보더라고.

(변) 지난 4월 코드게이트 때 주니어 세미나에서는 '코드가상화 접근과 분석'을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최근에는 딥러닝에 관심이 많아. BoB(차세대보안리더양성프로그램) 합격 발표가 최대 관심사긴 하지. (웃음)

(임) 나도 BoB 신청하는데. 정말 붙었으면 좋겠다. 우리 다 같이 합격해서 만나면 진짜 재밌겠다.(웃음)

BoB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기술연구원(KITRI)이 진행하는 최고 보안 전문가 양성 과정이다. 단계별 멘토링을 제공하고 전액 무료로 진행되기 때문에 경쟁률도 높다. 학생부터 현업에서 일하는 직장인까지 연령대 구분 없이 지원받는다. 다섯 명 모두 지원했다는 BoB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섯명 동시에) 완전 갓(God), 신이지.

(문) BoB를 수료했다는 건 실력은 물론 인성, 리더십, 사명감까지 다방면으로 인정받는 길 아닌가. (고등학생이 참여한다면) 대학 입학이든 취업이든 원하는 방향으로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잖아.



◇"국내 보안산업 창업하기 힘들어" 그래도 미래에는 후배 돕는 일 하고파


두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고 나니 궁금해졌다. 이렇게 똑똑한 아이들의 꿈이 무엇일까. 기자가 어린시절 생각해 본적도 없는 엄청난 꿈을 꾸지는 않을까. 그들의 꿈은 소박했지만, 우리 현실의 씁쓸함과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다.

(서) 굶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상 밖 대답에 기자는 '굶지'를 해킹 용어인 줄 알고 되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밥먹고 살았으면 좋겠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국내에서 창업은 어려운 것 같아. 외국에서라도 언젠가 창업을 해보고 싶긴 하지.

(지) '저 녀석 정도면 믿을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보안 분야뿐만 아니라. 인성이 참 중요한 것 같아. 무슨 일을 하든지 바른 쪽으로.

(변) 해킹 분야 일 하면서 이 분야를 꿈꾸는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 프로그래밍이 아니면 사실 관심이 있어도 공부하기 어렵잖아. 교과서도 없고. 그런 후배들 위해서 일해보고 싶어.

(문) 나랑 같은 생각이네. 예전에는 보안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년 말에서야 이쪽 관심 있는 친구들 만
나기 시작했어. 네트워크도 쌓고 하면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런 환경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나도 미래에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지) 오! 다들 내가 하는 중학생 대상 SW교육 학교기업, 거기에 나중에 들어오면 되겠다. 좋은 인재들인데?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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