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No~" 절규에 가까운 탄식…'K팝' 인식에서 인정으로

머니투데이 칸(프랑스)=김고금평 기자 | 2015.06.10 05:25

[미뎀 2015] 'K팝 나이트 아웃' 현장에서 본 'K팝의 성과'…재미와 실험으로 100여건 계약

맥주를 마시던 20대 스페인 남성 관객이 국악 리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마치 한국 국악 교습소에서 몇 년 배운 듯, 어깨춤이 예술이다. 이 남성은 6인조 퓨전 국악그룹 고래야 무대가 비로소 끝나고 나서야 맥주를 쏟을 뻔한 몇 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다니엘 야라멘디(23)는 “이런 리듬에 어떻게 춤을 추지 않을 수 있느냐”며 “한국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무대”라고 했다.

‘한국의 시규어로스’로 불리는 6인조 모던록 그룹 로로스 공연에서 맨 앞줄을 차지한 주인공은 프랑스 80대 노부부였다. 이 부부는 손을 꼭 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아방가르드적인 록 선율을 호기심있게 지켜봤다.

3인조 레트로 걸그룹 바버렛츠의 무대는 특히 젊은 여성 팬들의 지지를 듬뿍 받은 ‘어우러짐의 현장’이었다. 사라 라노(27)는 “옛날 노래를 부르는데도, 너무 신선하고 세련됐다”면서 “‘하모니 그룹’ 중 단연 돋보일 정도로 가창력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로큰롤라디오의 무대는 그들의 노래명처럼 ‘닥치고, 춤’(Shut up and Dance)의 향연이 펼쳐진 무아지경의 현장이었다.

올해 49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최대 음악마켓 ‘미뎀’(MIDEM)이 여전히 시선을 집중한 곳은 ‘한국 뮤지션’들이었다. 지난 6일 프랑스 칸 빨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홀에서 열린 ‘K팝 나이트 아웃’은 ‘K팝’이 아이돌 위주의 음악이라는 세계 음악 관계자들의 ‘인식’을 세계 경쟁력에도 뒤지지 않는 한국 뮤지션의 가치에 대한 ‘인정’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6일(현지시각) 한복을 입고 '미뎀 2015'행사 중 'K팝 나이트 아웃' 무대에 오른 3인조 걸그룹 바버렛츠. 이들은 뛰어난 가창력과 재미있는 퍼포먼스로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danny@

◇ “No~” “Ah~” 절규에 가까운 탄식…기대 이상의 호평

6일 ‘K팝 나이트 무대’는 한국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재미’와 ‘실험’의 연속이었다. 첫 무대를 장식한 주인공은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받은 로로스. 대중적인 록을 하지 않아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이들은 그러나 유럽에선 ‘먹히는’ 장르로 출연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던 밴드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관객의 눈과 귀를 단박에 제압하는 독창적인 선율들이 쉴새없이 쏟아졌다. 기타는 기타로 볼 수 없는 ‘소리’들이 수시로 변주됐고, 드러머는 브러시를 ‘스틱’처럼 연주해 ‘비트없는 비트감’을 선사했다. 보컬 제인은 노래를 하다 첼로 연주를 하고, 다시 신서사이저로 옮기는 1인 3역을 도맡았다.

사운드에선 극과 극이 만나는 낯섦의 동화(同化)였고, 구성과 흐름에선 아방가르드적 재즈 형태를 구사했다. 실험을 미학의 한 분야로 보는 프랑스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춘 무대였던 셈. 조용히 ‘감상’하던 소규모 관객 그룹들은 마지막 곡이라며 퇴장을 준비하던 멤버들을 향해 “오, 노~”(Oh, No~)하며 아쉬운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퓨전 국악그룹 고래야.

실험이 끝난 무대는 퓨전 국악 그룹 고래야가 재미로 이어받았다. 이날 무대 중 관객이 가장 온 몸을 다해 흔들고 뛰며 즐긴 파티용 공연이었다. 처음 선보이는 국악 리듬에 객석은 너나 할 것 없이 춤사위로 흥건해졌고, 보컬의 여음구가 한번 흘러나오자 이내 따라 부르며 한 몸이 됐다.

바버렛츠는 한복을 입고 세련미 넘치는 팝을 불렀다. 맛깔스러운 흑인 솔 창법을 제대로 보여준 소녀들의 ‘한방’에 박수가 연방 터져나왔다. 예정된 곡수보다 더 많은 곡을 정해진 시간 안에 들려줬는데도, 객석에선 “벌써 끝났느냐”며 ‘아~’하는 아쉬움이 곳곳에서 나왔다.

해외 음악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로큰롤라디오는 1년에 200회 이상 라이브 공연을 해온 경험을 증명이라도 하듯, 안정되고 본능에 충실한 무대를 선보였다. 첫 곡에서 약간 경직된 무대로 빈틈을 보였던 이들은 세 번째 곡부터 소위 ‘무아지경’에 빠진 신들린 연주와 퍼포먼스로 남성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모던록 그룹 로로스.

◇ 왜 ‘그들’은 한국 뮤지션에 주목했나

참여 4팀은 모두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이었다. 이들은 글로벌화하기위해 가사를 영어로 써야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한국어를 버리지 않았다. 대신 사운드에서만큼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만한 요소를 구비했다.

로로스는 일렉트로니카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몽환적 선율에서도 강한 그루브를 잃지 않았고, 로큰롤라디오는 완벽한 짜임새로 누구나 한 번 들어도 ‘혹’하는 마음이 가는 색깔의 사운드를 들려줬다. 이날 공연에서 만난 관객들의 상당수가 “한국 음악이 이 정도일지 몰랐다”는 반응을 내보인 것도 4팀의 실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미뎀의 영업이사인 기욤 크리사풀리는 “프랑스인들은 내공있는 무대를 좋아하는데, 오늘의 무대가 그랬다”면서 “개인적으로 ‘2015 미뎀’ 무대 중 가장 훌륭했다(best acts of night of MIDEM)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던록 그룹 로로스가 소속된 오름엔터테인먼트의 최인희(오른쪽) 대표가 외국 음반사 제작자(왼쪽)와 로로스 밴드에 대한 음악성과페스티벌과 관련된 계약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 협업·페스티벌 등 계약 100여건 ‘러브콜’ 쇄도…‘새로운 것’ 찾는 열망 반영

올해 미뎀은 처음으로 B2B(기업 대 기업) 세션에서 올해 처음 B2C(기업 대 소비자)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오프라인 음악 산업이 침체하고 온라인 산업이 ‘대세’로 떠오른 상황에서 음악 산업이 더 이상 업체 종사들만을 대상으로 하기엔 한계가 엿보이기 때문. 비즈니스 계약 관계도 음반 수입보다 (뮤지션의) 협업 체계나 공연 활성화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형국이다.

미뎀은 ‘의외의 환경’에서 얻은 수확의 보고다. 46년 미뎀 역사에서 한국은 늘 수입상처럼 ‘남의 음반’만 죄다 가져왔지만, 지난 3년 전부터 우리 것을 수출하고 대외에 알리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K팝 나이트 아웃’은 그런 면에서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음악 상품’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 지난해보다 덜 유명한 인디 뮤지션들이 올해 미뎀 무대에 섰지만, 그 성과는 기대이상이다.

이미 공연 9건, 곡 작업 9건, 홍보 유통 30건 등 모두 100여 건에 이르는 계약이 오갔다. 유럽에 맞는 정서의 음악을 선보인 로로스는 공연 이후 노르웨이 퍼블리싱 업체로부터 “북유럽 정서에 너무 잘 어울린다”며 러브콜을 받았고 오슬로와 코펜하겐 페스티벌 진출 의사도 타진중이다.

로큰롤 밴드 로큰롤라디오.

팝스타 마돈나를 키우고 노브레인을 미국에 진출시킨 제작자 시모어 스타인은 로클롤라디오의 음악을 듣자마자, “한국에 프로듀서를 보내겠다”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로큰롤라디오는 특히 미뎀이 끝난 뒤 파리로 건너가 한차례 공연을 펼쳤고, 프랑스 일렉트로닉 밴드 모조와 함께 조만간 음반 작업을 시작한다.

6일 한국 무대를 끝까지 지켜본 미국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총감독인 제임스 마이너는 “바버렛츠처럼 인상적인 한국 뮤지션의 공연을 다시 보기 위해 미뎀을 찾았다”며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곧 아시아 시장에 관심 있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에 한국 뮤지션의 입지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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