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부 창업지원금 사용에 뿌리박힌 관료주의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 2015.06.08 06:30
"정부 창업지원금은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받는 게 낫습니다. 사업 초기 종잣돈으로 쓸 수가 없어요. 괜히 복잡한 일만 떠안는 겁니다."

3차례 정부지원금을 운용해본 창업 4년차 장모씨의 말이다. 지원금으로 1만원짜리 펜 한 자루를 사더라도 복잡한 서류 작업을 거쳐야 해서다. 그는 "사업에 방해가 될 정도다. 돈 쓰기가 너무 어렵다"며 "어떤 곳은 정부지원금 서류 작업만 담당하는 직원을 고용했다더라"고 덧붙였다. 필요한 기자재 하나를 구입해도 사전·사후 승인절차, 증빙자료 제출 등 수많은 서류 작업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창업지원금의 비목별로 사용제한을 두던 규정을 폐지, 각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10만원 미만 소액결제도 사후 검증으로 바뀐다. 청년 창업자가가 실제 필요에 맞는 곳에 자금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정부 창업지원금을 운용하는 데에도 뿌리 박힌 관료주의 때문에 정작 사업 종잣돈으로 쓸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서류작업에 진저리가 났다며 정부지원금을 다시 신청하지 않겠다는 창업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창업지원금 운용에 변화를 줬지만 부담스러운 서류 작업은 여전하다.

자금 운용 기간도 문제다. 주관 부처마다 다르지만 정부지원금 5000만원을 보통 10개월 안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 6개월 안에 지원금 1억원을 모두 써야 한다고 공지한 경우도 있다. 창업가들은 지원금 사용 기간이 1년 미만이다 보니 쓸 데 없는 곳까지 돈을 써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창업 2년차 김모씨는 "지원금 6000만원을 아껴 쓰면 2년 동안도 쓸 수 있는데 몇 달 안에 모두 쓰라고 하니 쓸 데 없는 것까지 지출하게 된다"며 "돈이 남는 경우에는 기관 관계자가 '지인 명의를 빌려 인건비라도 사용하라'고 종용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데는 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지나치게 의식해서다. 사전에 정한 지출 계획에 맞아야 하고 갖가지 서류를 요구하는 것 등이 그렇다. 한 부처 관계자는 "왜 수십 만원 소액을 정부 돈으로 지출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지원금은 큰 목돈이 들 때 지출하라는 의미다. 정부 돈을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창업자들은 지원금을 악용하는 소수를 막으려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게 해선 된다는 입장이다. 어떤 방지 장치를 만들어도 악용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방법을 찾게 돼 있다는 것이다. 정부 창업지원금이 제 역할을 하려면 창업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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